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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들이 본 드라마 '용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용의 눈물'은 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자주 화제에 오른다.

사실(史實)에 엄격한 사학자들이지만 배경이 여말선초(麗末鮮初)의'권력이동기'여서 사극을 통해'극적 요소가 숨어든 행간의 역사'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

최근'다시 찾는 우리역사'라는 통사를 집필한 서울대 한영우(韓永愚)교수는 이 시기를“왕조 창업에서 문치로 이어지는 과정이어서 많은 역사적 교훈을 캘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한다.

韓교수는“이방원과 삼봉 정도전을 대립구도로 한 권력다툼이 재미를 배가시킨다”고 평한다.韓교수는“그러나 두사람의 선굵은 대결은 단순한 정쟁을 넘어 신권(臣權)중심주의(정도전)와 왕권중심주의(이방원)의 정치철학과 세계관의 경쟁”이라고

격상시킨다.분명한 정치철학과 정책대안 없이 지역대결구도와 패거리정치로 정쟁만 일삼는 오늘날 정치행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듯하다.몇권의 역사서보다 일반에게 영향력이 더 클 수 있는 TV사극에서 고증의 사실성을 염려하는 시각도 있다

.

성균관대 사학과 이장희(李章熙)교수는“'용의 눈물'엔 정사와 야사가 뒤섞여 있다”면서“논란이 있거나 극적 재미를 위해 가공된 사실은 해설이나 자막으로 구분해 주면 좋겠다”고 조언한다.예를들어 이성계의 강빈(김영란)과 이방원의 부인

민씨(최명길)의'고부갈등'이 정치를 좌우하는 모습,세자빈 윤씨와 내시 이만과의 통정사건등은 극의 재미를 높여주지만 정사에는 없는 부분이라는 것.

그러나 국호 선정('조선'이냐'화령'이냐),세자 방석의 책봉문제등을 두고 명나라 황제를 찾아가는 창피스런 장면에 대해 서울대 국사학과 정옥자(鄭玉子)교수는“전통시대 성리학적 외교관행에 비춰보면 사대주의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

다”고 설명한다.대선의 해를 맞아'용의 눈물'을 현실정치와 연결지어 해석하는 시각도 흥미롭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경국대전'을 근거로“왕권주의와 신권주의는 정치상황에 따라 서로를 대체하며 기능했다”며“이같은 전통은 임시정부와 해방후 한국정치에서도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순환으로 이어져 왔다”고 분석했다.그에 따르면 요즘

정계 일각에서 거론되는 내각제는 독단.독선으로 흐른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대체제적'성격이 짙다는 것.이교수는 또“창업한 태종과 문치를 이룬 세종에서 보듯 국정에는 창업기와 수성기의 철학이 다르다”면서“깜짝쇼식 개혁과 노동법

.한보사태등에서 보듯 문민정부는 문화를 기반으로 한 수성기의 철학은 없이 계속 창업을 일삼아 나라가 어수선하다”고 지적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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