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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기쁨 <91>포도나무 나이가 맛을 좌우한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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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호 30면

며칠 전 샤토 트로타누아(Chateau Trotanoy)의 오너 가족이자 장 피에르 무엑스사의 3대에 해당하는 에두아르 무엑스가 일본에 왔다.

무엑스 하면 샤토 페트뤼스(Chateau Petrus)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트로타누아도 빈티지에 따라서는 자주 페트뤼스를 능가하는 와인을 세상에 내놓는다. 젊을 때는 접근하기 어렵고 난해하지만 숙성을 거쳐 재능을 활짝 피워낸 와인을 마실 때면 늘 새로운 감동을 얻게 된다.

인간의 가장 왕성한 활동시기가 40대인 것처럼 포도나무도 가장 좋은 열매를 맺는 나이가 따로 있다. 에두아르에 의하면 수령 20년에서 40년 사이가 그 시기다. 포도나무는 대개 3년째부터 열매를 맺는다. 젊은 나무는 포도가 많이 열리지만 송이 하나하나가 알차지 못해 맛이 묽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이번에는 포도의 양이 주는 대신 잘 여물고 응축된 열매가 달린다.

평균 수령이 대략 25년이 넘는 나무의 포도로 만든 와인에는 레이블에 ‘비에유 비뉴(고목)’라는 표시를 하는 생산자가 많다. 프랑스 론 지방과 남부 이탈리아 같은 곳에서는 100년 된 고목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런 포도는 과연 맛있을까?

샤토 트로타누아 빈티지별 레이블 모음.

에두아르가 소유한 밭에도 100년 된 고목이 있지만 송이당 포도알이 적게 달린 것에서만 농축된 맛이 난다고 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지금처럼 근대재배학에 기초해 기른 포도나무와 옛날처럼 질보다 양을 중시하던 시대에 대량으로 수확해온 포도나무는 가능성 자체가 다른데 100년이 넘은 나무는 대부분 지쳐서 좋은 포도가 영글지 못한다고 한다. 트로타누아의 포도나무들은 평균 수령이 28년으로 지금이 가장 이상적인 나이다.

‘트로타누아’라는 이름은 중세 프랑스어 ‘trop anoi(매우 귀찮은)’ ‘trop ennuye(매우 절망스러운)’에서 유래한다. 이곳의 토양은 점토와 자갈로 이루어져 몹시 촘촘하기 때문에 비가 온 뒤에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져 소나 말을 이용해 경작하던 시대에는 작업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게다가 밭 위쪽은 자갈질, 아래쪽은 깊은 점토질이다. 점토질 밭은 발이 푹푹 빠져 밭에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런 이유에서 트로타누아의 밭은 ‘사랑이 많은 토양’이라 불리게 되었다.

트로타누아는 메를로 90%, 카베르네 프랑 10%로 구성돼 있다. 일반적으로 메를로가 중심인 와인은 일찍 숙성돼 빨리 마셔야 한다고 하지만 트로타누아는 장기숙성형이다.

에두아르는 1988년산이 지금 마시기에 좋은 빈티지라고 추천했다. 며칠 전모 백화점에서 강연할 때 2004년산 트로타누아를 열었는데 너무 떫고 맛과 향이 굳게 닫혀 있어 괜히 열었다고 후회했다. 지난해 아기 다다시 남매의 호의로 2000년산 트로타누아를 마시고 엄청난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는데 1988년산은 분명 그보다 더 근사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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