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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전화 외교’… 부시와 달리 유럽 껴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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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7일 정권인수위 경제자문단과 함께 당선 후 첫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경제 난국 돌파의 최우선 순위는 중산층 구하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왼쪽부터 로라 타이슨 캘리포니아대 비즈니스 스쿨 교수,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장관,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조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 제니퍼 그랜홀름 미시간 주지사,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 폴 볼커 전 FRB 의장, 램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 리처드 D 파슨스 타임워너 회장, 앤 멀케이 제록스 회장,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 대부분 두 손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매뉴얼 내정자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 “소원했던 관계는 풀고, 끈끈했던 사이는 더욱 다져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당선 직후부터 세계 정상들과 활발한 전화 외교를 펼치고 있다. 오바마는 당선 이틀 후인 6일(현지시간) 이명박 대통령 등 9개국 정상과 전화 통화를 한 데 이어 7일에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등 6명의 정상과 통화했다. 주말인 8일에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해 사흘 동안 17개국 정상과 전화로 만났다.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는 30분 넘게 대화했고, 다른 정상들과도 대부분 10분 이상씩 통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까지 70여 일 남은 오바마 당선인이 주요 정상 17명과 일일이 통화한 것은 외교를 중시하는 오바마 진영의 정서를 감안해도 이례적이다. 특히 지역적으로 전통적인 유럽 동맹국들뿐 아니라 중동·아시아 정상들과도 골고루 통화하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도 주의 깊게 들어 다자주의 외교를 중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오바마 전화 외교에서 드러난 키워드 셋=첫째 ‘대서양 동맹 복원’의 메시지가 확실하다. 오바마의 첫 통화 상대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영국의 브라운 총리였다. 오바마는 이들에게 “금융위기를 해결하려면 미국과 유럽 동맹국 간의 공조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인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역시 유럽 동맹국들의 협조가 필수라고 호소했다. 이라크전에 반대한 프랑스·독일을 ‘늙은 유럽(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이라고 부르며 관계를 악화시켰던 부시 행정부와는 확연히 대조된다.

둘째 키워드는 ‘자신과 생소한 파트너들의 불안 달래기’다. 이번 전화 외교는 오바마와 인맥이 없어 그의 당선을 다소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본 정상들과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이 대통령과의 통화가 그랬다. 오바마는 “불고기와 김치를 좋아한다”며 한국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껄끄러운 나라 정상들과도 관계 복원 의지를 분명히 했다. 파키스탄이 대표적이다. 오바마는 대선 후보 시절 “파키스탄의 허락이 없더라도 정보만 확실하면 국경 지역을 폭격해 오사마 빈라덴을 쳐야 한다”고 발언해 파키스탄의 반발을 샀다. 그러나 오바마는 7일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과의 통화에선 “미국은 파키스탄과 오랜 기간 우호적 관계를 맺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해 파키스탄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루지야 사태로 관계가 급랭한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에게도 “이른 시일 내 만나자”고 화해의 제스처를 던졌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에게도 “미·중 관계의 발전은 양국뿐 아니라 세계에도 혜택이 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키워드는 ‘다자외교 중시’다. 취임 전에 여러 정상과 릴레이 대화를 함으로써 본인이 대선 기간 내내 강조했던 ‘다자주의 노선’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 준 것이다.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상대방의 우려 사항도 귀담아들었다. 후 주석은 “미국은 대만 문제 등 민감한 현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총리도 “북한 문제와 지구온난화 등 현안에 대해 미국이 밀접히 협력했으면 좋겠다”며 일본인 납치자 문제, 교토의정서 비준에 성의를 보여 달라고 간접 주문했다. 오바마는 두 정상의 말에 이해를 표시했다.

최지영 기자


사르코지와는 특별히 길었다
30분 통화, 다른 정상 두 배
미·프랑스 관계 강화 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6일(현지시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무려 30분 동안 전화통화했다. 외견상으로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유럽연합(EU) 순회의장인 것을 배려해 미국과 EU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변국 정상들보다 최소 2배 이상 통화한 것은 미국-프랑스의 관계 개선과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 프랑스의 역할 강화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AFP통신은 양국 정상 간 통화가 이례적으로 긴 것은 대미 관계 개선에 주력하고 있는 사르코지의 의지가 크게 작용됐다고 전했다. 또 최근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발 벗고 뛰어다닌 사르코지의 노력과 역량을 오바마가 높게 평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양국 정상의 출신 배경에 의미를 두는 해석도 있다. 사르코지는 헝가리 출신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늘 이민 2세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크레익 스테이플턴 프랑스 주재 미국대사는 “사르코지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에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였으며, 오바마 당선인 역시 아웃사이더로 정치를 시작한 인물인 데다 두 사람 모두 변화를 내세우며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 간 밀월 관계에도 불구하고 둘의 만남은 앞으로 6개월 뒤에나 이뤄질 것 같다. 사르코지는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금융정상회의에 참석하지만 양측 회동은 예정된 것이 없다. AFP통신은 내년 4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가 양국 정상 간의 첫 만남이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강병철 기자


오바마에 쏟아지는 초청장
유럽의회·APEC 회의 등 잇따라 연설 요청
내년 1월 취임식 성황 예고
비행기표·호텔 예약 줄이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게 지구촌의 러브콜이 뜨겁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는 대조적인 ‘소프트 다자주의 리더십’이 기대되는 오바마를 먼저 초청해 눈도장을 찍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7일 정권인수위 경제자문단과 함께 당선 후 첫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경제 난국 돌파의 최우선 순위는 중산층 구하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왼쪽부터 로라 타이슨 캘리포니아대 비즈니스 스쿨 교수,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장관,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 조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 제니퍼 그랜홀름 미시간 주지사,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 폴 볼커 전 FRB 의장, 램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 리처드 D 파슨스 타임워너 회장, 앤 멀케이 제록스 회장, 로런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 . 대부분 두 손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이매뉴얼 내정자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 [시카고 AFP=연합뉴스]


한스게르트 푀테링 유럽의회 의장은 미국 대선 하루 만인 5일 오바마에게 “내년 4월 프랑스에서 열릴 유럽의회 본회의에서 연설해 달라”고 초청했다. 미국 대통령은 1985년 로널드 레이건 이래 23년 동안 유럽의회에서 연설한 적이 없다. 내년도 유럽연합(EU) 순회의장국인 체코도 이날 오바마에게 “취임 직후 미·EU 정상회의를 갖자”고 제의했다. 페루도 22~23일 리마에서 개최될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부시 대통령과 함께 오바마를 초청했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도 5일 오바마의 인도 순방을 공식 제의했다.

내년 1월 20일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도 참가 열기가 뜨겁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미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선서를 보기 위해 워싱턴 일대 숙소 10만여 실이 불티나게 예매되고 있다. 방값은 1박에 1000달러를 넘어섰다. 취임일을 전후한 워싱턴행 비행기표도 곧 매진될 것으로 보인다. 24만 장의 취임식 티켓 중 일부는 ‘드림틱스’ 등 인터넷 업체에서 최고 3250달러(9일 현재)에 팔리고 있다.

취임식 당일 워싱턴 시내는 20만 명이 운집했던 63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워싱턴 집회나 100만 명이 모여든 95년 워싱턴 흑인 대행진과 비슷한 인파가 몰릴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이에 따라 워싱턴시 당국은 안전·교통 대책 수립에 착수했다.

◆러브콜 왜 이리 뜨겁나=오바마를 초청하면 자신들의 관심사를 이해시키고 결단을 끌어내기 쉬워진다는 판단에서다. 유럽의회는 숙원인 미국의 기후변화협약 재가입에 오바마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2001년 자국산업 보호를 구실로 기후변화 협약에서 탈퇴했지만 오바마는 친환경 정책을 표방한 만큼 그를 조기에 초청하면 미국의 재가입이 이뤄질 것이란 게 유럽의회의 생각이다. 페루 역시 내년부터 발효될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오바마의 역할이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도 역시 미국과 맺은 민수용 핵개발 협력 프로그램에서 오바마의 협조를 원하고 있다.

김민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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