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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국 취항 때 에베레스트 등정한 기분 느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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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세계 3대 항공사 아랍에미리트항공의 승무원은 일곱 개의 토후국을 상징하는 일곱 겹으로 접힌 실크 스카프를 두른다. 승무원들은 대부분 사막의 모래 빛깔을 닮은 베이지색 유니폼을 입지만 가끔은 남색 유니폼도 눈에 띈다. 이들은 기내 서비스와 승무원 관리를 책임지는 사무장(purser)으로 승무원의 최고 등급에 해당한다.

600여 명 한국인 승무원의 맏언니… 한국인의 미소에 자긍심 #조수연 아랍에미리트항공 사무장

총 8000여 명의 에미리트항공 승무원 중 사무장은 500명 남짓. 그중 조수연씨는 한국인 최초로 사무장 유니폼을 입었다. 1995년 대학을 갓 졸업한 조씨는 낮잠을 자다 하늘을 나는 꿈을 꿨다. 파란 하늘이 보이고 눈 밑에는 세계 지도가 펼쳐졌다. 잠에서 깬 뒤로도 머릿속에서 그 장면이 떠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조씨의 꿈은 비행기 조종사가 됐다. 런던의 항공대학에 진학한 조씨는 억척스럽게 학비를 벌었다. “하이드파크에서 햄버거 장사, 접시닦이, 베이비시터, 가정 도우미 등 닥치는 대로 했다.” 한국에선 엄두를 못 낼 일이었지만 가슴에 품었던 꿈은 그녀를 변화시켰다. “당시 내가 살던 미국 교회의 쪽방은 온통 비행기로 가득 차 있었다. 벽은 비행기 그림으로 도배했고 밤새 비행기 모형을 조립해 공항처럼 꾸며 놨다.”

그뒤 히스로 공항에서 통역과 홍보 업무를 하며 자리를 잡았지만 비행을 향한 갈증은 채워지지 않았다. 98년 한국에 있던 어머니가 아랍에미리트항공의 한국 승무원 채용 공고 소식을 알려왔다. 과감하게 영국 생활을 접고 귀국한 조씨는 200:1의 경쟁률을 뚫고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꿈으로 가득했던 두바이에서의 생활은 설움으로 시작됐다.

“그때는 사람들이 남북한도 헷갈릴 때였고 툭하면 동양에서 온 조그마한 여자라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뒤 한국 승무원 수는 계속 늘어 600명을 넘어섰다. 승무원 출신국가 140여 곳 가운데 다섯째로 많은 수였다. “초창기부터 한국인 승무원들이 성실성을 인정 받았기 때문”이라고 아랍에미리트항공 홍보실의 라디카 마칸이 말했다.

한국인의 미소를 회사가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에미리트항공에 한국 노선이 없다는 점이 타향살이 신세인 조씨에게 큰 아쉬움이었다. 2005년께 드디어 반가운 소문이 돌았다. 에미리트항공이 한국행 노선을 취항한다는 것이었다. 긴가민가하던 차에 회사가 조씨에게 한국에 대한 브리핑을 요청해왔다.

“가슴이 뛰었다. 발표 전날 인터넷을 뒤져 단군신화부터 한글까지 다시 공부하고 집에 있는 김치, 쌀밥, 한국 요리책 등을 다 싸갔다.” 그 뒤로 에미리트항공은 한국 노선 취항을 준비하기 위해 ‘Soul of Korea’라는 한국 승무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승무원들이 오랜 외국생활로 잊었을 법한 한국어 표현이나 에티켓을 배우는 프로그램이었다. “회사에서 특정 나라를 위해 그렇게 집중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개설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매일 태극기를 깨끗이 다려서 교실 앞 복도에 꽂았다. 그때마다 꼭 에베레스트 정상에 깃발을 꽂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2005년 5월 1일 마침내 에미리트항공의 두바이~인천 노선이 처음으로 열렸다. “손님 여러분,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조씨의 떨리는 목소리가 기내에 처음 울려 퍼졌다. 승객들을 배웅하던 한국인 승무원들이 하나 둘씩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마스카라가 다 번질 정도로 울었는데 한국인 승객들은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심전심으로 우리 속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때를 회상하던 조씨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조씨는 요즘도 종종 이코노미석까지 카트를 밀곤 한다. “불평하는 승객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게 재미있다.” 얼마 전 인천행 노선에서 아프리카 출신의 부사무장이 조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국인 남자 승객이 “다시는 에미리트항공을 이용하지 않겠다”며 화를 내고 있었다. “이미 화가 난 일은 어쩔 수 없지만 비행기에서 승객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무엇보다 경청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석 달 뒤 조씨는 사무장이 아닌 승객으로서 어머니와 함께 인천행 노선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앞자리에 바로 그 불만 승객이 앉아 있었다.

“‘에미리트항공 또 타셨네요’라고 말을 걸었더니 그 손님이 ‘조수연 사무장 아니었다면 다신 안 탔을 것’이라고 대꾸해줬다.” 하지만 그녀의 비행기를 조종하는 꿈은 어찌 됐을까? 조씨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얼마 전 미국에 가서 직접 경비행기를 몰아봤다. 고대하던 꿈을 이뤘으니 당분간은 내 천직인 승무원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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