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산마을>32.끝.구례군 산동면 상위마을

중앙일보

입력 1996.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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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백두대간의 끝자락 지리산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는다.
지리산의 절경에 반한 사람은 「지리산 10경」을 말한다.지리산에서 나는 많은 특산물을 맛본 사람에겐 이곳이 「풍요의 땅」이다.어떤 이는 시심(詩心)을 돋우는 곳이라고도 한다.
빨치산에 대한 기억을 갖고있는 사람이라면 지리산은 「한(恨)」과 「고통」의 산이다.
지리산은 이 각각의 모습을 모두 얼싸안는다.사방 8백리,3개도 5개 시.군에 걸쳐있다.지리산 주위에 사는 구례.남원.하동.함양.산청사람들은 모두 자신을 「지리산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지리산은 지역감정도 이데올로기도 모두 포용하는 용광로인 셈이다.
지리산에 무수히 널려있는 산마을 가운데 상위마을(구례군산동면)은 지리산을 닮은 산마을이다.
지리산 절경에 파묻힌 풍족한 마을이지만 진한 아픔도 간직하고있다. 지리산 해발 7백에 있는 상위마을은 어떤 이름을 붙여도잘 어울린다.봄에는 「고로쇠 약수」마을이고 가을엔 「산수유」마을이다.또 요즘엔 「흑염소」마을이라 불러도 틀리지 않는다.
봄철이면 상위마을의 고로쇠약수를 찾아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든다.외지인들은 고로쇠약수를 큰 함지박에 가득 담아놓고 오징어나 명태를 고추장에 찍어먹으며 밤새 이야기꽃을 피운다.
산수유는 10월에 열매를 맺기 시작해 온 마을이 붉게 타오른다.산수유는 상위마을이 있는 산동면 외에 경기.충청 일부지방에서도 생산되지만 해발 7백 지리산에서 나는 산동 산수유가 최고품으로 꼽힌다.전국 총 생산량의 절반이상을 차지하 고 일본.대만으로도 수출된다.
겨울은 또 어떤가.민박집에서 절절 끓는 구들바닥에 허리를 지지며 먹는 구수한 닭죽맛은 일년 몸조리를 통째로 하는 듯하다.
최근 들어 이 마을의 특산물로 자리잡은 것은 흑염소다.마을이장 구형근(59)씨는 방목으로 흑염소를 키우고 있다.
2백여마리를 산에서 방목하는데 산속으로 달아나버리면 안되기 때문에 하루 한번 먹을 것을 준다.재미있는 것은 염소를 부르는소리다.『담배』『담배』하고 부르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산속 여기저기서 염소가 모습을 드러낸다.염소가 담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이곳 염소는 방목해 키워선지 산양(山羊)을 많이 닮았다.
그러나 상위마을 한구석에는 지리산의 비극적인 역사도 간직돼 있다.해방전까지 85호에 달했던 상위마을은 48년 여순 10.
19사건과 빨치산 토벌과정을 거치면서 수난을 당해 25여호만 남았다.아직도 이 마을엔 열아홉살 처녀가 여순 1 0.19사건과 관련돼 국군에게 끌려가며 부른 『산동애가』라는 노래가 구전돼 내려온다.
그러나 이젠 그것도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상위마을은 용광로같은 지리산 품자락에 안겨 찾아오는 외지인들을 맞아들이기 바쁘다.
글=하지윤.사진=임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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