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산마을>30.덕유산자락 명덕리

중앙일보

입력 1996.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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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덕유산 자락 명덕리(전북장수군장계면)를 들어서면 주목(朱木)군락이 한눈에 들어온다.주목은 집안에 두고 보는 관상수로는 최상으로 치는 나무다.자연산일 경우 수천만원대를 호가한다.그 귀하다는 주목이 명덕리에는 지천으로 깔려 있다.
명덕리에는 몇십만주의 주목이 자라고 있다.물론 자연산은 아니고 모두 기른 것이다.이 주목은 金태섭(73)씨 개인소유다.「주목박사」로 불리는 金씨는 30년전부터 주목을 심고 가꾸었다.
노후대책으로 시작한 것이 명덕리의 명물이 됐다.이젠 혼자의 일이 아니고 마을의 일이 됐다.주목을 심거나 가지치기를 할때는마을사람들이 대부분 동원돼야 할 정도다.
이제 나이가 든 金씨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자신의 주목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 보통사람들도 쉽게 감상하기를 바라고 있다.
주목은 배수가 잘되는 사질양토에다 높은 곳에서 잘 자라는데 명덕리는 이런 조건에 잘 맞는다.마을 주위로 덕유산.남덕유산.
육십령.백운산등 백두대간의 산줄기들이 내달리고 있다.
金씨의 주목농장 덕분에 명덕리는 상당히 품위(?)있는 마을이됐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큰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그아픔은 마을이 「과부촌」이라고 불리는데서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일제시대 이 마을 근처 육십령에는 몰리브덴,즉 수연광산이있었다.수연은 총기제작에 필수적인 비철금속이다.일제는 중일전쟁.태평양전쟁을 치르기 위해 이곳 광산을 집중적으로 개발했다.마을남자들이 징용으로 끌려갔다.
일제가 떠나면서 힘겹던 광산일은 끝났다.그러나 「굴병」이 기다리고 있었다.광산 굴속에서 돌가루를 오래 마시는 사람들은 규폐증에 걸리는데 이 마을에선 이것을 「굴병」이라 불렀다.
마을 남자들은 하나둘씩 쓰러졌다.광산일을 했던 남자들은 대부분 요절했다.광산일을 했던 이 마을 토박이로 70세가 넘은 남자들은 아무도 없다.주목박사 金씨도 6.25 직후 다른 마을에서 왔다.
한귀리(74)할머니는 남편 李삼식씨를 30년전에 떠나보냈다.
일제시대 광산에서 몇년 일한 것이 원인이 돼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떴다고 한다.그녀의 시댁식구 가운데 남편을 비롯해 4명의 남자가 모두 굴병으로 세상을 떴다.
그래서 마을 아낙네들은 이 폐광을 죽음의 광산이라 해 쳐다보지도 않았다.그러나 세월은 참 묘한 것이다.
이 폐광은 10여년전부터 차돌을 캐는 광산으로 다시 개발됐다.일제시대때 깊게 굴을 파면서 주위에 쌓아놓은 돌무더기에서 질좋은 규석이 많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아낙네들은 다시는 찾지 않을 듯했던 이 광산으로 다시 발길을돌렸다. 남편을 일찍 잃은 할머니도 있었고 며느리도 있었다.부업을 위해서다.살아가기 위해서는 억척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굴안에 들어가 하는 작업은 아니다.부녀자들은 괭이로 돌을 캐내고 삼태기에 돌을 담은뒤 머리에 이고 가 차에 돌을 뿌린다.그러고는 품삯을 받아 자녀들을 기르고 가르쳤다.덕이 많다는 뜻의 덕유산은 산마을이 지닌 아픔마저도 품안에 안아버리는 모양이다.
글=하지윤.사진=임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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