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남준 선생의 정신을 지금 여기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2호 05면

백남준은 갔지만 그 정신을 잇는 후학의 길은 여러 갈래로 퍼져 가고 있다. 흔히 ‘백기사’라는 줄임말로 불리는 ‘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 같은 모임이 있는가 하면, 정기적으로 백남준 특집과 연재물을 싣는 월간잡지 ‘춤’도 있다. 미디어 아트 전문기관인 ‘아트센터 나비(이하 ‘나비’)’는 첨단 기술을 가지고 노는 방법을 궁리했던 백남준의 도저한 정신을 잇는 놀이터라 할 만하다. ‘나비’는 지금은 사라진 워커힐미술관을 이어 서울 서린동에 2000년 개관한 뒤 ‘대중과 소통하는 미래형 미술관’을 향해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다. 백남준이 서린동에서 태어난 사실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미디어 아트 전문기관 ‘아트센터 나비’ 노소영 관장

10월 7일부터 11월 18일까지 열리는 ‘이상한글’은 한글날에 즈음해 마련한 ‘나비’ 기획전이다. ‘이상한 글’이라 볼 수도 있고, ‘이상 한글’이라 풀 수도 있겠다.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도록 창제된 한글의 민주적 정신과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뉴미디어의 평등정신을 겹쳐 놓으면서 일상에 함몰된 둘 사이의 미학과 조형성을 찾는 만남의 자리다. 전시 준비가 한창인 2일 오전 8년 동안 ‘나비’를 이끌어 온 노소영(47·서울예술대 디지털아트학과 교수) 관장을 만났다.

-백남준과 ‘나비’는 통하는 점이 많은 것 같은데요.
“저는 백남준 선생을 척박한 우리 풍토에서 기적처럼 돌출한 위대한 스타라 봅니다. 일찌감치 1950년대에 독일로 건너가 시대를 앞서가는 지적 공동체와 합류해 그 흐름과 함께하며 당대의 최신 기술을 예술로 승화한 정신을 닮고 싶습니다. 한국의 무속을 바탕 삼아 테크노 샤머니즘을 세계에 내놓은 그분이 있어 너무 다행입니다.”

-안상수씨의 작품 제목 ‘피어랏, 한글’이 재미있습니다.
“매일 쓰고 말하는 우리가 정작 한글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는 표현이랄까요. 완벽한 알파벳이란 하나의 이상이랄 수 있겠지만 서구 학자 중에는 한글을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 평가하는 이도 있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할 때 한국 사람이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나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건 돈 문제가 아니라 자부심의 바탕이 돼야 할 정신적인 것, 문화와 예술의 힘이 약한 탓이었어요. 서구 문명을 빨리빨리 허덕허덕 쫓아가느라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우리 자신을 잃어버린 결과지요. 이제 스스로 질문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어떤 가치를 좇아가야 할 것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나비’가 해 왔고 해 나갈 활동 지향점은 무엇인지요.
“남 얘기를 해석하고 따라가기보다 우리 얘기를 해 보자는 거지요. 지난달 25일 시작해 이달 말까지 목요일에 여는 ‘나비 포럼’ 주제가 ‘뉴미디어와 예술의 확장(www.nabi.or.kr)’입니다. 언제까지나 외국 이론에만 매달려 있을 것인가, 도발하는 토론회지요. 예술이 한국 사회 안에서 어떤 구실을 해야 할까 고민하고 그 담론이 우리 안에서 나오도록 천천히 해 보려 합니다. 디지털 강국이 갈고닦은 고도의 테크놀로지에 아름답고 매력 넘치는 콘텐트를 입히자는 겁니다. 백남준 선생이 이미 한 세기 전에 고민했던 것을 21세기에 천천히 되씹어 보는 센터를 만들고 싶습니다.”

Innovation Lab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