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자체기록 첫 발견-한림大,미국서 자료 찾아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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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6.25전쟁 당시 빨치산이 자체 작성한 전투상황,대원명부,입산전 기록,평양과의 연락사항,빨치산내 신문제작등 빨치산 활동의전모를 파악할수 있는 자료가 대량으로 발견됐다.이 문서에는 빨치산 남부군의 총수 이현상이 노명선이란 가명으로 활동한 내용과그 주력군인 김지회 부대의 명단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또 빨치산들은 도당별로 신문을 제작했고 북한으로 송환된 이인모가 『경남노동신문』의 편집장으로 활동했으며 그동안 미스터리로남아있던 남로당 최후 지도부인 김삼룡.이주하의 총살 장소도 남산 헌병사령부 후문 5백 지점이었던 것으로 드러 났다.이같은 사실은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소장 최영희)의 방선주 객원교수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빨치산 제작 신문.보고문건과한국경찰이 미국 CIC에 보고한 자료에서 밝혀졌는데,총3천6백여쪽의 방대한 양이다.
세계적으로 유래없이 오래 지속된 6.25당시의 빨치산 활동 전모를 보여주는 이 자료는 빨치산 스스로 자신의 활동을 기록.
보고한 것을 유엔군이 평양입성때 노획한 문서와 체포.사살된 빨치산들이 소지하고 있었던 문건들이다.
이 자료들은 그동안 경찰의 토벌기록이나 빨치산 생존자들의 증언과는 달리 직접 활동했던 빨치산의 1차기록이라는 점에서 그동안 가려져있던 빨치산의 활동전모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매우 희귀한 자료로 보인다.
이 자료에 따르면▶빨치산의 보고.명령체계가 남로당 출신의 이승엽으로 집중돼 있었으며▶북한이 휴전협정이 제기된 이후 빨치산의 도주로를 자세히 명시하면서 후퇴를 명령했고▶1.4후퇴 당시서울 후방을 공략하기 위해 빨치산 조직을 강화하 라는 지시를 「김일성 전투명령서」2호.74호로 내렸던 것으로 드러났다.이같은 사실은 빨치산들이 북한과의 연락이 단절.고립돼 있었다는 사실과 달리 북한의 지시를 충실히 받아 수행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서들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당시 빨치산의 편제.시기별 조직변경.전투일지.빨치산 인적사항등이 자세히 기술되어있는 부분이다.특히 인적사항은 경찰의 토벌기록에도 없는 전혀 새로운사실로,당시 빨치산의 사회적 성격을 밝히는데 결 정적인 자료다. 이 자료의 발견을 전해들은 서중석(성균관대)교수는 『지금까지 체험과 기억에 의존한 빨치산 기록과 달리 당시의 1차적 자료라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발견』라고 평가했다.현대사연구가 김남식(전 평화연구원 수석연구원)씨는 『당시 빨치산 들이 도당별로 신문을 낸 것은 조직성과 정치성이 강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창호.정창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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