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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희망 이야기] "사물놀이 치료로 닫힌 마음 열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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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 김용인씨(左)가 경북 포항 남구보건소에서 정신지체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사물놀이를 지도하고 있다. [포항=조문규 기자]

지난달 23일 오후 2시쯤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남구보건소에 난데없이 북.장구.꽹과리.징소리가 울려퍼졌다.

"덩덩 쿵더쿵…."

소음으로 치자면 귀가 따가울 정도였지만 환자나 의료진 모두 "벌써 몇 년째 들어온 소린데 뭘…"이라며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소리가 나는 2층 강당으로 올라갔다. 돗자리가 깔린 바닥에 20~30대 남녀 15명이 열심히 가락을 맞추고 있었다. 이들 사이로 50대 여인이 부지런히 오가며 자세를 고쳐주랴, 얘기를 나누랴 분주하다.

수강생들은 재활 치료 중인 가벼운 우울증.정신분열증 환자들이고, 50대 여인은 2001년 7월부터 사물놀이 지도를 통해 치료를 돕는 자원봉사자 김용인(55.여.포항시 남구 오천읍)씨다.

金씨는 "정신질환자들은 대화의 문을 닫아버리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사물놀이를 통해 이들의 입을 여는 것 자체가 증세 호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金씨는 매주 금요일 오후 1시만 되면 어김없이 이곳에 나와 장구채를 잡는다. 두시간 동안 사물놀이를 가르치며 대화도 나눈다. 남구보건소에 등록된 정신질환자 130명 가운데 15~20명이 꾸준히 참가하고 있다.

金씨가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한 것은 2001년 7월부터다. 하지만 그가 상담 자원봉사에 첫발을 디딘 것은 그보다 훨씬 앞선 1994년 1월 국군통합병원 정신병동에서였다. 험난했던 자신의 인생역정을 도와준 포항 시민들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다고 했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한 86년 서울에서 포항으로 이사한 뒤 알거지 상태였어요. 책 외판원으로 일해 집안을 다시 일으켜세우기까지 책 한권 사줄 때마다 눈물을 흘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책을 사준 국군병원 한 관계자가 "정신병동에 있는 장병에게 인생 체험담을 들려주면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부탁했다.

여기서 자신을 얻은 金씨는 95년 10월 자원봉사자 10여명을 모아 '노둣돌회'란 봉사 모임을 만들었다. 상담활동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이듬해 시민단체에서 상담사 교육과정도 밟았다. 외로운 노인을 위문할 생각으로 사물놀이를 배운 것도 이때다.

그가 사물놀이를 가르친 환자는 줄잡아 1000여명. 金씨는 "이들에게 '이젠 건강하다'며 안부 전화를 받을 때의 보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포항=홍권삼 기자<honggs@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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