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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1번지 지하에선 교회·성당·禪院이 이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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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 60주년을 맞은 국회.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곳으로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4000여명의 상주 인원에 절·교회까지 들어서 있는 '작은 마을'을 중앙SUNDAY가 소개한다. 다음은 기사 전문.

1980년대 중반까지 국회에는 ‘엘리베이터 걸’이 있었다. 키 1m65㎝ 이상의 늘씬한 미녀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의원들 대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2004년 8월까지는 ‘의원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의사당과 의원회관 엘리베이터에서 ‘의원용’ 팻말을 떼어낸 지금은 의원도 민원인과 함께 부대낀다. 국회의원만 드나들 수 있었던 의사당 2층 정문 쪽 출입구를 국회 직원이 출퇴근에 이용한 지도 오래다. 국회 개원 60년 동안 달라진 풍경들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국회는 여전히 의사봉과 몸싸움과 밤샘 표결로 상징되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곳’이다. 중앙SUNDAY가 정치 뉴스 바깥에 숨어 있던 국회의 모습을 찾았다.

사실 국회 문턱은 75년 건립 당시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지하 1층이던 본청 방문객 출입구가 2005년 지상 1층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치나 높이는 바뀌지 않았다. 사연은 이렇다. 지하 2층, 지상 6층으로 정해져 있던 각 층의 명칭을 지하 2층을 없애 버리고 지하 1층부터 지상 7층까지로 고친 것이다.

하루아침에 6층 건물이 7층 건물이 돼 버린 셈이다. 사무실 표지판, 엘리베이터 버튼까지 모두 교체했다. 번거로운 ‘조삼모사’를 단행한 이유는 뭘까. 국회 관계자는 “국회의원 전용 출입문이 있는 층을 1층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 때문에 사실상 2층을 1층으로 정한 게 애초부터 잘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국민의 위치도 한 층 오른 것일까.

국회 본청에서 사라진 것은 지하 2층뿐만이 아니다. 본회의장에서 재떨이와 일반 명패가 사라졌다. 의원끼리 난투극을 벌일 때 사용하던 ‘무기’를 제거한 것. 제헌국회 시절 ‘다방 재떨이’에서 67년 맞아도 덜 다치고 소리만 요란한 양은 재떨이로 바뀌었다. 던지지 못하게 고정식으로 해 놓아도 억지로 뜯어내 던진 몇몇 힘센 의원 때문인지 73년 2월 국회법으로 회의장 내 금연 조치를 내리면서 재떨이가 사라졌다.

명패도 ‘흉기’였다. 제헌국회에선 단상에 던진 나무 명패에 속기사가 머리를 맞아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으며 속기를 계속하던 일도 있었다. 상처가 6개월을 갔다고 한다. 63년 맞아도 덜 아픈 플라스틱 명패로 바뀌었고 2005년 9월 본회의장이 전산화되면서 고정식 전자명패가 이를 대체했다.

하지만 상임위나 특위에선 여전히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플라스틱 명패를 사용한다. 15대 때만 해도 서한샘 의원만 한글 명패를 썼는데 현재는 한자 명패가 사라져 가는 추세다. 국회 지하 주차장에선 알파벳을 볼 수 없다. 국내 최대 규모의 도서관과 연결되는 만큼 ‘B1-D26’ 같은 영문자와 숫자 대신 ‘지하 3층 ㄱ’ ‘지하 4층 ㄹ’으로 표기했다.

‘한밤 방뇨’로 지킨 푸른 돔
의사당 총 높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연푸른 돔은 “위기가 닥치면 반으로 쪼개지면서 태권브이가 나온다”는 유머가 만들어질 만큼 국회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지난해 1월 ‘로봇 태권브이’ 재개봉 시사회가 본청은 아니지만 의원회관에서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설계에 없던 디자인을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웅장하게 만들려고 억지로 추가한 권위주의의 상징이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상여 같다”는 등 비판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았다. 98년에는 돔을 기와 지붕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미 국회의 상징으로 굳어졌다” “예산 낭비”라는 등의 반대가 많아 무산됐다.

2000년 6월에는 돔을 황금색으로 칠하기 위한 예산안이 국회 운영위에 제출됐다. 프랑스 파리의 오벨리스크 등 황금 안료로 도금한 조형물처럼 멋있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시공비 4억9000만원에 5년마다 4000여만원의 재도금 비용이 들어가 “국회의원이 (비난의) 덤터기를 쓰게 된다”는 반대로 전액 삭감됐다.

건립 당시부터 돔은 위기를 겪었다. 붉은색 동판이 두어 달 지나면 부식돼 ‘중앙청처럼’ 푸른색으로 변한다는 설명을 정일권 당시 국회의장 등이 못 미더워했기 때문이다. 선우종원 당시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 사무처 건설국장이 빗물 자국 같은 것을 가리키면서 이런 식으로 부식돼 간다고 설명했다”며 “나중에 자기가 그 전날 밤 돔에 몰래 올라가 방뇨했다고 말하더라”고 회고했다. 빨리 부식시키기 위해 작업 인부들이 집단으로 매일 방뇨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국회에 숨겨진 지하 벙커는 없지만 의원회관~의사당~도서관~의정관을 잇는 지하통로가 있다. 붉은 카펫이 깔려 있고 벽에는 사진과 서예 작품들이 걸려 있어 심심하지 않다. 뜨거운 햇살이나 비를 피하기 안성맞춤이라 의원들이 애용한다. 직원들도 이용할 수 있지만 방문객의 출입은 통로 입구에서 통제한다.

국회 지하에 숨겨진 것이 있다면 와인 72병이다. 화기(火氣)를 막아준다며 세운 정문 쪽 해태상 한 쌍의 건립 비용 3000만원을 해태제과에서 제공했다. 이때 해태주조㈜에서 최초로 개발한 100% 국산 와인 ‘노블와인’을 양쪽 해태상 아래에 36병씩 묻었다. 묻은 지 100년 뒤인 2075년에 꺼내기로 했다지만 장기 숙성용 와인이 아니니 마시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도시 속 도시, 섬 위의 섬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75년 9월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버스 노선이 두 개밖에 없을 정도로 주변이 황량했다. 매점조차 없어 간식거리라도 사려면 영등포까지 나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 ‘의사당로 1번지’는 여의도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섬, 소도시라고 할 만하다. 주상복합건물처럼 국회 내에서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은행·우체국·매점 같은 일반 편의시설은 물론이고 세탁소·미장원·이용실·구두수선소도 있다. 의무실과 내과·치과·한의원·약국도 있다. 대여료 15만원만 내면 되는 예식장,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페도 있다. 의사당 지하 1층에는 교회·성당·선원(禪院)이 다 들어와 있어 기도회 등이 종종 열린다. 밤낮없이 일하는 국회 특성상 남녀 샤워실도 마련돼 있다. 빵집·안경점·서점·꽃집도 입주해 있다.

금배지 우선 구역
‘의원 전용’ 구역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국회를 이끌어 가는 국회의원만을 위한 배려가 곳곳에 남아 있다. 정문 출입구를 직원도 쓸 수 있지만 가운데 문은 여전히 국회의원만을 위한 것이다. 의원회관 지하 2층의 남녀 ‘건강관리실’은 국회의원만을 위한 운동센터다. 여성 의원용 사우나는 언제나 이용자가 한 명이라고 한다. 알몸으로 다른 여성 의원을 만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전화로 미리 확인하고 가기 때문이다. 도서관 5층에는 의원 열람실과 연구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 주황색의 푹신한 의자가 일반 열람석과는 다르다. 의원회관 1층에도 의원들 편의를 위해 열람실을 마련했다.

의원회관과 본회의장에서는 의원끼리 경쟁이 치열하다. 푸른 잔디밭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로열’(716~730호)은 여야 중진이나 실세들이 배정받는 게 관행이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15대 때부터 720호실을 쓰고 있다. 호실에 의미를 두는 의원도 적잖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4·19를 연상시키는 419호실을,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남북 공동선언 날짜와 같은 615호실을 쓰고 있다. 당별로 구획을 나누는 본회의장 좌석 앞자리는 늘 ‘힘센 상임위’의 몫이기도 하다.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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