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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이야기] 마취제, 주사제·크림·스프레이 등 제품 형태 다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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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의학의 ‘꽃’이라는 수술을 가능케 한 고마운 약이 있다. 마취제다. 『삼국지』엔 마취 없이 독화살 제거 수술을 받는 관우의 모습이 그려지나 이런 인내를 범부에게 기대하긴 힘들다.

마취제가 없었던 옛날엔 뇌진탕을 일으키거나 목을 조르는 등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환자를 마취시켰다. 술·카카오나무 잎·양귀비(아편)·맨드레이크(만드라고라) 뿌리 등도 마취에 썼다. 마취제가 나오기 전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에 말에 자살하는 환자도 수두룩했다. 통증이 죽음보다 더 가혹하다고 여겨서다.

현대적 의미의 마취제가 등장한 것은 1846년. 미국 매사추세츠병원 의사 윌리엄 몰턴이 치과 치료(발치·종양수술)에 에테르를 활용한 것이 효시다. 이 수술 뒤 ‘무감각’을 뜻하는 ‘마취’(anesthesia)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상계백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연준흠 교수).

마취제는 국소(부위)마취제와 전신마취제로 분류된다. 국소마취제는 의식은 깨어 있지만 통증은 느끼지 않게 하는 약이다. 리도카인·메피바카인·부피바카인·로피바카인 등이 있는데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리도카인이다.

리도카인 성분이 1∼2% 함유된 주사제를 비롯해 5% 든 연고·크림·패취제, 10% 든 스프레이 등 다양한 형태로 나와 있다. 5% 이상을 쓰면 피부 감각이 마비된다. 피부과 등에서 점을 빼는 레이저 시술에 앞서 얼굴에 바르는 것이 5% 리도카인이다. 주사 맞기를 두려워하는 어린이, 조루증 남성의 성기에도 효과적으로 쓰인다.

전신마취제는 수술 받는 동안 의식을 완전히 잃게 하는 약이다. 정맥에 주사하는 정맥마취제와 기도 내로 투여하는 흡입마취제로 나뉜다.

‘포폴’(성분명 프로포폴) 등 정맥마취제는 심장·뇌 수술 시 흔히 사용한다. 마취에서 깨어난 뒤 구토감이 적지만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날까 봐 마취 전문의가 수술 내내 바짝 긴장해야 한다는 것(마취가 풀리는 것 같으면 용량을 높인다)이 약점이다.

흡입마취제는 전체 마취제 시장의 80%를 차지할 만큼 마취제를 대표한다. 이 약은 계보가 있다. 에테르→클로로포름→사이클로프로페인→할로테인으로 이어졌다.

할로테인도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간에 괴사를 일으키는 등 간 독성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대타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세보레인’(성분명 세보플루란)·‘슈프레인’(데스플루란)·‘포란’(아이소플루란) 등이다. 이들은 모두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이 중 ‘세보레인’은 혈압을 덜 떨어뜨리고 마취 뒤 역겨운 냄새가 적다. 2시간 이내 수술에 널리 쓰인다. ‘슈프레인’은 빠른 마취 유도와 각성이 장점이다.

마취제에 대한 일반인의 가장 흔한 오해는 "전신마취 하면 머리가 나빠지거나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신마취제가 뇌세포를 파괴하거나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강동성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신근만 교수).

손수건에 마취제를 몇 방울 떨어뜨린 뒤 코에 대면 사람이 곧바로 의식을 잃는 첩보 영화의 한 장면도 사실 무근이다. 설령 이렇게 강력한 마취제가 있다 해도 코에 들이대면 숨을 쉴 수 없어 곧 생명을 잃는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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