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쇼핑몰이 금광이면, 내 일은 곡괭이 파는 일

중앙선데이

입력 2008.08.31 11:54

“더 이상의 방황은 없습니다. 이것으로 제 인생의 승부를 걸 겁니다.”
동대문 청평화시장에서 만난 김성식(26·사진)씨의 직업은 ‘사입(사들이기)’이다. ‘사입’이란 동대문·남대문 시장과 같은 곳에서 의류 소매상인(또는 온라인 쇼핑몰)을 대신해 옷을 사거나 골라주는 직업을 말한다.

김씨는 주로 온라인쇼핑몰을 대행한다. 네티즌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진을 보고 옷을 고르면 김씨가 쇼핑몰을 대신해 동대문 시장에서 옷을 산 뒤 네티즌의 집으로 바로 배달해 주고 반품까지 처리해 준다. 최근 붐을 이루고 있는 인터넷 의류 쇼핑몰 덕분에 생겨난 신종 이색 직업이다. 인터넷 의류 쇼핑몰 입장에서도 도매시장을 직접 방문하지도 않고, 재고를 떠안을 필요 없이 주문받은 것을 처리만 하니 편리하다.

김씨의 사입 경력은 고작 두 달여에 불과하다. 하지만 벌써 100곳 이상의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건당 택배 마진 1000원과 쇼핑몰에서 받는 회비가 주 수입원이다. 지난달에는 직원 4명과 함께 2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연말까지는 쇼핑몰 400곳 확보가 목표다. 온라인 쇼핑몰 구축 대행, 인터넷에 올릴 의류모델 사진 촬영도 같이 한다. 지난 2년여 동안 인터넷 의류 쇼핑몰을 직접 운영하면서 쌓은 노하우가 바탕이 됐다.

김씨는 “네이버에만 하루 200개씩의 의류 쇼핑몰이 생겨난다”며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 때 금광은 망했어도 청바지·곡괭이 판매상은 돈을 번 것처럼 사입대행업은 21세기판 곡괭이 판매상”이라고 자평했다.

김씨의 하루는 길다. 오전 10시에 일어나 곧바로 동대문 시장으로 출근해 다음날 오전 4시에나 집으로 돌아온다. 자신의 인터넷 쇼핑몰 도우미 사이트 ‘사입25(www.4225.co.kr)’로 올라온 주문서를 정리하다 보면 오전 6시에나 잠이 든다. 이 때문에 하루 취침시간은 4시간에 불과하다.

김씨는 2001년 서울 휘경공고 전자기계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애당초 학교 수업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이 좋았던 김씨에게 학교는 ‘놀이터’ 수준이었다. 대학 입시에서 삼육대 경영정보학과에 합격했지만 2개월 만에 자퇴하고 등록금을 돌려받았다. 아버지가 어려운 살림에 은행 대출을 받아 아들의 등록금을 마련해 준 것을 뒤늦게 안 때문이었다.

“대학 공부보다는 당장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씨는 아파트 베란다 새시 시공, 공사판 막노동, 동대문 선글라스 노점상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군에 가기 전에는 7개월 동안 북창동 단란주점에서 웨이터로 일하기도 했다. 2004년 6월 제대 후에는 1년 반 동안 남대문 시계 도매상에서 일하기도 했다. 인터넷 게임 ‘리니지’에 빠졌다가 컴퓨터 20대를 차려놓고 게임 무기 아이템 판매도 해봤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뒤 지금까지 경험했던 다양한 직업들은 내가 무엇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자평했다. 창업 2개월, 액세서리 판매상을 하는 선배와 5평 사무실을 나눠 쓰고 있는 김씨지만 포부는 원대하다.
“국내 시장에만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동대문시장을 터전으로 삼아 중국·일본·동남아 등 아시아를 무대로 사업을 펼쳐 나갈 겁니다.”

● 내가 본 김성식 - 동료 상인 조창수씨
성식이를 안 지 5년이 넘었다. 남대문시장 시계 도매상가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그의 집이 의정부였는데 가게가 열리는 오전 7시30분에 칼같이 출근해 퇴근 시간인 오후 7시까지 약 12시간을 하루도 지각이나 결근 없이 근무했다. 재래시장에 흘러들어온 20대 초반의 청년들 중 성식이만큼 성실하게 일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머리가 좋은 덕분인지 일도 아주 빨리 배웠다. 생각하는 것도 또래보다 조숙했고, 대충 건성으로 일하는 법이 없었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뛰는 젊은이다.
최준호 기자·염지현 인턴기자 joonh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