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수련하던 도인들이 도시로 내려와 빌딩 숲 사이에 도장을 내고, 도(道)를 닦는다는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한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30일 개봉). 영화사에서는 '도시 무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류승완. 류승범 형제가 자신들을 '주류'로 띄워준 저예산 액션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후 감독과 주연으로 다시 만나 관심을 모은다.
30~40대라면 '달려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로 시작해 '파아란 해골 13호 납짝코가 되었네~'로 끝나는 '마루치 아라치'의 만화 주제곡을 기억할 터이다.
영화는 바로 그 '마루치 아라치'를 연상시킨다. 31세인 류승완 감독은 동생을 액션 영웅으로 만들어 어릴 적 향수를 21세기 버전으로 표현했다.
▶ "내 장풍 한번 보실래요?" 형(류승완)이 감독한 영화에 출연한 류승범이 영화 속 무술 장면을 자랑하자 극 중에서 도인(道人)으로 나오는 안성기씨가 "이제 하산해도 되겠다"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최승식 기자]
의협심은 강하나 싸움에는 서툰 경찰 상환(류승범)이 괴력을 지닌 의진(윤소이)을 만나 수련에 나선다.
의진의 아버지 자운(안성기)은 상환이 득도(得道)를 할 재목이라 여기고 정성을 쏟는다. 그런데 도인(道人) 흑운이 봉인에서 깨어나면서 상환과 대결을 벌이게 된다.
이들은 빌딩 사이를 훨훨 날고, 수시로 장풍을 날리고 공중 부양(浮揚)을 식은 죽 먹기로 해댄다. 안성기.류승범을 통해 그 무림(武林)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입산 수도? 입도(入都) 수도!=류승범은 6개월에 걸쳐 무술과 와이어 액션을 연습했다. 몸무게가 8kg이나 준 대신 탄탄한 근육이 붙었다. 스틸 사진의 매끈하고 우람한 근육을 보며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한 줄 착각하는 이도 있지만, 진짜다.
젊은 배우들이 생고생을 하는 사이, 안성기는 무엇을 했을까. 영화에선 가장 고수로 나오지만 실제 액션은 단 한 컷. 유리 파편을 피해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이다. "후배들에게 좀 미안하더라. 결투가 다 벌어지고 난 뒤에 나타나 '멈추시오'라고 한 마디 하는 게 고작이니 말이다. 멋지게 무술을 펼치고 싶었는데 클라이맥스에서 '주화입마'(혈도가 막혀 있는 상태)에 빠져 옴쭉달싹 못하게 하니 원… 허허허." 그러자 류승범이 "진정한 고수는 나서지 않는 법"이라며 위로한다.
▶전법은 허허실실(虛虛實實)=영화는 무협이되 다소 코믹하다. 수련받는 상환은 하도 약골이어서 '왕따' 신세이고 말투도 어눌하기 짝이 없다. 몰래 야쿠르트 먹는 모습을 들키자 "저, 칠선(七仙)들은 잘 계신다지요"라며 의뭉하게 말을 돌린다. 자운은 또 어떤가. 스승다운 무게란 찾을 수 없다. 장풍을 배우려는 상환에게 "바람 크기에 따라 (돈이) 다르다"고 할 만큼 유머 감각도 있다. 그러나 적과 마주치면 둘은 갑자기 날렵해진다. 분수대의 물을 가르고, 진검이 목을 겨눠도 꿈쩍하지 않는다.
류승범은 "상환의 캐릭터마저 진지해버리면 관객이 지친다. 긴장된 액션 장면만 끝까지 이어지면 부담스럽지 않겠는가. 게다가 감독님과 나는 어딘가 비어 보이고, 착해 보이는 상환 같은 인물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하산은 언제=영화에서 '아라한'은 득도의 경지를 일컫는다. 두 사람은 연기자로서 어느 경지에 와 있는 걸까. "연기의 맛이나 경지를 이야기하기에는 부끄러운 단계다. 그냥 연기 자체가 즐거울 따름이다."(류승범)
"연기란 늘 새롭다. 나이를 먹어면서 보는 시각도 달라지니 새로울 수밖에 없다.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아직도 새 시나리오를 받아들면 '미치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인물 분석에 골머리를 앓는다. "(안성기)
깨끗한 사생활, 철저한 자기 관리는 안씨를 빈 틈 없는 완벽주의자로 비치게 했다. 그랬더니 일화를 하나 들려준다. '실미도'팀과의 술자리에서 그가 대취하자 설경구 등 후배들이 "이제야 사람 같다"며 그렇게들 좋아하더라는 거다.
그렇다면 5년차 배우인 류승범은 누구에게 풀어진 모습을 보여줄까. 혹시 형인 류감독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감독님도 끈끈한 정이 있고 대하기 쉬운 동생이기 때문에 나를 쓰지는 않았을 게다." 대선배 앞에서도, '감독님' 형 앞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는 이 청년. 국민 배우의 재목이 아닐까.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