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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선정위원회’가 고른 新고전<30>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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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 15면

‘공포의 물리’ ‘물리 귀신’, ‘제(쟤)는 물리 포기했다’는 ‘제물포족’. 물리학의 ‘물’자도 듣기 싫다는 사람들의 입에서 흔히 흘러나오는 말이다. 반면 물리학과 사랑에 빠진 사람은 아름다운 논리와 대칭성의 학문, 만물의 이치를 가장 간단하게 서술하는 언어라며 물리학을 치켜세운다.

이렇게 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물리학. 당신은 어느 쪽인가. 그런데 잠깐.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를 읽어 본 뒤 선택하자. 일반적으로 물리학을 싫어하는 사람은 물리학에 등장하는 골치 아픈 수식을 핑계 삼는다. 만약 그동안 복잡한 수학 때문에 물리학이 두려웠다면 이 책은 물리학과 가까워질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이 책은 뉴턴·아인슈타인 이후 20세기 후반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리처드 파인만이 일상적 언어로 물리학의 개념을 설명한 교재'파인만의 물리학 강의(Lectures on Physics:1963)'에서 상대적으로 쉬운 여섯 개 장을 골라 편집했다.

저자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과학 지식이 단 한 문장밖에 남아 있지 않다면 그 내용은 바로 ‘원자가설’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은 영원히 운동을 계속하는 작은 입자로 거리가 어느 정도 이상 떨어져 있을 때는 서로 잡아당기고 외부 힘에 의해 압축돼 거리가 가까워지면 서로 밀어낸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을 출발로 물이 증기로 변하는 상태변화, 원자 사이의 인력, 압력, 다양한 화학반응을 설명한다.

파인만은 우주의 진행 방식을 체스 게임에 비유하며 체스 게임의 규칙은 신이 정했으며 ‘이해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이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처음에는 입자의 고유한 특성인 관성과 상호작용인 힘을 설명하면서 미시세계에서 적용되는 양자물리학과 핵 속의 입자도 맛보기로 소개한다.

더불어 물리학이 다른 과학 분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설명하는 장에서는 물리학이 화학·생물학·천문학·지질학·심리학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설명하고 교과서에서 질리도록 들은 에너지 보존 법칙을 블록 놀이에 비유한다. 어떤 블록으로 무엇을 만들어도(에너지의 형태가 변해도) 블록의 개수는 변함이 없다(에너지는 보존된다)고 설명한다.

물리계를 분석하는 데 유용한 에너지 보존 법칙을 수학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도르래와 지레의 운동으로 표현한 것을 읽다 보면 물리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떨쳐 버릴 수 있다. 에너지 보존 법칙과 더불어 실험 장소를 어디로 정하건 동일한 조건하에서 실험 결과는 모두 같다는 선운동량 보존 법칙, 물리계를 바라보는 각도를 아무리 바꿔도 물리 법칙은 불변이라는 각운동량 보존 법칙과 함께 전하 보존 법칙, 양성자와 중성자 같은 중입자에 관한 바리온 보존 법칙, 전자와 뮤온·뉴트리노 같은 경입자에 관한 렙톤 보존 법칙 등 자연계의 여섯 가지 보존 법칙도 만날 수 있다.

범우주적으로 적용되는 중력을 설명하는 장에서는 자연현상을 단순하게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깨달을 수 있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이 달이 지구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며 중력의 본질에 접근한다. ‘하나의 공통된 지점’을 중심으로 동시에 공전하는 지구와 달이 중력의 영향으로 지금과 같은 원운동을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마지막 장에서 만날 수 있는 ‘이중 슬릿 실험’은 파동-입자의 이중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유명하다. 전자의 양자적 행동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총알을 가지고 실험하고, 다음엔 수면파로 실험을 전개해 전자의 입자성과 파동성을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안내한다. 즉, 전자는 총알 같은 입자처럼 덩어리 형태로 물체에 도달하지만, 특정 위치에 도달할 확률은 파동처럼 간섭무늬를 그리며 분포한다. 간섭무늬는 두 개의 물결이 서로 만날 때 만들어지는 무늬를 말한다.

사실 마지막 장은 조금 어렵지만 시험 볼 걱정이 없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동안 학교 수업 시간에 들은 물리학을 한 장의 그림처럼 감상할 수 있게 된다. 물리 문제를 풀며 나무 한 그루만 만져 봤다면 자연이라는 거대한 숲을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신(新)고전=지난 반세기 동안 출간된 책 중 현대사회에 새로운 시대정신이나 문제의식을 제공한 명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산하 ‘좋은책 선정위원회’가 중앙SUNDAY 독자들에게 매주 한 권의 신(新)고전을 골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