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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예보, 왜 이렇게 틀릴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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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주말, 휴일이 지날 때마다 기상청은 홍역을 앓는다. 기상 예보가 틀렸다는 항의가 빗발쳐서다. 장맛비가 숨바꼭질 하듯 출몰하면서 시작된 이래 벌써 6주째다. 특히 여름 휴가철과 맞물린 주말, 휴일 날씨는 온국민의 관심사다. 더욱이 기상청이 툭하면 장비 탓을 했던 얄미운 태도도 뇌리에 남아 있다. 벌써 5백억원이나 들인 슈퍼 컴퓨터 2호기를 사용중이다. 그러니 네티즌들이 ‘슈퍼 컴퓨터를 갖고 스타크래프트 게임만 즐기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올 법도 하다. 기상청 예보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기상청 설립 이래 가장 뜨거운 것이 아닐까 싶다.

예보가 빗나간 데 대한 지난 10년간 기상청의 태도 변화도 놀랍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논란이 벌어지면 기상청은 장비를 들먹거렸다. 특히 엄청나게 많은 수치를 재빨리 소화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를 목놓아 외쳤다. 급기야 1997년 슈퍼컴퓨터가 도입됐다. 매년 슈퍼컴퓨터의 이용과 유지에 50억원 가까이를 쏟아 붓고 있다. 더욱이 얼마 안 있으면 5백50억원을 호가하는 3호기가 도입된다. 이제는 기상 위성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마저 나온다. 그런데도 예보 정확도에 대한 논란은 더 커지고 있을지언정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제는 기상청도 더 이상 장비 탓을 하지는 않는다. 대신 비난을 정면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예보가 틀린 것이 아니라 틀린 예보라는 정의가 틀렸다는 것이다. 수도권과 강원 지역에 50~150mm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던 지난 주말, 휴일의 예보가 좋은 예다. 실제로 이 지역의 강우량은 대체로 10~20mm를 벗어나지 않았다. 네티즌들을 포함해 상당수 국민들은 기상청의 예보가 틀렸다고 비난한다. 반면 기상청은 예보가 틀리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수도권과 강원 지역에 대한 예보는, 일부 지역에 50~150mm의 폭우가 쏟아질 수도 있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6주 연속으로 틀렸다는 주말, 휴일 예보 가운데서 진짜로 틀린 경우는 단 한 번뿐이다. 당시는 비가 안 온다고 했지만 실제로 비가 왔다.

어느 쪽의 말이 맞을까? 한 마디로 기상청의 변명은 궁색하다. 차라리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리는 게 낫겠다. 실로 수많은 전문가들이 틀린 예측으로 망신을 당해왔다. 지난 1894년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는 2050년이면 런던의 모든 도로가 9피트(약 2m80cm)의 말똥으로 뒤덮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의 주요 교통수단이 말이 끄는 마차였다는 점만 생각한 근시안적 예측이었다. 지난 세기 말의 Y2K 소동은 또 어떤가? 정보통신(IT) 분야의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새천년의 재앙을 예상했지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해 변화무쌍할 수밖에 없는 기상 예보는 미래 예측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분야에 속한다. 지난 2004년 인도에서도 요즘 우리와 비슷한 논란이 벌어졌다. 여름철 호우기(monsoon)에 기상청의 폭우 예보가 계속 빗나갔다. 전국민의 항의가 잇따르자, 라지반과 난준디아라는 두 기상학자가 지난 70년간 기상 예보 능력이 얼마나 향상됐나를 따져봤다(G. Rajeevan, M. Nanjundiah, 'Monsoon prediction - Why yet another failure?' , 2005). 결과는 놀라웠다. 몬순에 대한 이해도 크게 증가했고 장비도 향상됐지만 예보 능력은 지난 1932년 이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우리 기상청 역시 차라리 기상 예보의 어려움을 솔직히 토로하는 편이 낫겠다. 주 5일 근무제로 주말, 휴일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이로 인해 기상 예보에 대한 기대감도 증가하는 상황이다. 여기다 지구 온난화로 날씨마저 더욱 변덕스러워지고 있다. 더욱이 주위가 온통 대륙과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인 우리나라는 기상 예보가 가장 어려운 지역으로 손꼽힌다.

그렇다면 일부 선진국에서 기상 예보를 둘러싼 논란이 비교적 적은 것은 왜일까? 예를 들어 미국은 광활한 지역으로, 지역별 기상 편차가 굉장히 크다. 그런데도 우리처럼 일방적으로 기상예보 기관이 비난을 받지는 않는다. 기상청이 외부적으로는 기상 예보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내부적으로 집착해야 할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1894년 <더 타임스>의 예측이 잘못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전망이 나오기 8년 전 칼 벤츠가 발명한 자동차가 교통수단의 대세가 될 것은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기존의 틀에 얽매이면 미래 예측은 어려워진다. 기술적으로는 옳을지 몰라도 큰 그림을 못 볼 가능성이 큰 것이다. 70년간의 기상 예보 능력을 점검한 인도 두 학자의 결론도 비슷하다. 인도 기상예보 기관이 쓰는 실증 모델과 다이내믹 모델 자체가 낙후돼 있더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호우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장비가 향상되더라도 항상 틀릴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는 1997년 슈퍼 컴퓨터의 도입과 함께 일본의 수치예보모델을 들여와 쓰고 있다. 이 모델 자체의 능력을 검증하고, 우리 실정에 맞게 개선할 필요가 있다. 기상 예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모델이다. 그리고 모델을 통해 얻은 결과를 얼마나 개선시킬 수 있느냐는 관측 역량과 예보관의 능력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자칫 지금과 같은 논란이 계속되면 기상청은 이외의 꼼수를 선택할지도 모른다. 이런 변수들을 그대로 두고 비난을 회피할 여지가 있는 예보를 자주 내보내는 것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담은 예보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있지만 실용적 가치는 크게 떨어진다. 미래학자들 가운데서도 뻔한 전망을 일삼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현재 기상청의 예보 능력 역시 미래학자들의 전망을 둘러싼 논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래학자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망치를 쥔 어린 소년에게는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미래 예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어 있는 마인드를 가진 이의 발상 전환이란 뜻이리라.

김방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