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에비앙 적신 폭탄주, 외국 선수들 '나도 끼워줘'

중앙선데이

입력 2008.08.03 10:38

업데이트 2008.08.03 20:48

중앙SUNDAY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모여.”
‘왕 언니’의 엄명이 떨어졌다. 선수들은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으로 호텔 지하에 있는 레스토랑에 몰려들었다. 하나같이 낯익은 얼굴이다. 강수연·박세리·김미현 등 고참 선수들은 물론이고 한희원·박지은·장정 등의 모습도 보였다. 2003년 7월 프랑스의 휴양 도시 에비앙에서 열린 LPGA투어 에비앙 마스터스 마지막 날의 에피소드다.

오랜만에 미국 땅을 벗어나 프랑스 대회에 나선 선수들은 해방감을 느꼈을 법도 하다. 게다가 대회가 끝난 토요일 저녁이었다. 양주에 맥주를 섞은 폭탄주가 돌았다. 이름하여 ‘단합주’. 술을 잘 못하는 선수들도 예외 없이 ‘원샷’을 해야 했다. 술잔이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선배들은 오랜만에 마주 앉은 후배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며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다.

선배들은 후배들을 다독거리는 동시에 군기(?)도 잡았다. 후배들은 선배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정신 자세를 가다듬었다.

해마다 에비앙 마스터스가 끝나는 날 저녁 열리던 이 단합대회는 연례행사로 굳어졌다. 이 모임이 언제 시작됐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코리안 시스터스’의 이 연례 모임은 말 그대로 단합의 장이었다. 오랜만에 필드가 아닌 술집에서 만나 서로 속내를 털어놓고 선전을 다짐하는 그런 자리였다.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여자오픈이 열리는 영국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필승을 다짐하는 모임이기도 했다.

술값은 왕 언니들이 내거나 그 해에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가 냈다.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재미교포 크리스티나 김은 자진해 이 모임에 참석했다. “한국 선수들의 파티에 나도 끼워 달라”는 외국 선수도 있었다고 한다(이상은 프로골퍼 A가 ‘캘리포니아 골프’에 전해준 이야기와 필자가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을 종합해 재구성한 것이다).

대회를 마친 뒤 술 한잔 하면서 회포를 푸는 에비앙 모임이 가능했던 것은 이 대회가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끝났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일요일 경기를 마치자마자 다음 대회가 열리는 장소로 달려가는 게 보통이지만 이 대회만큼은 유독 토요일에 끝나는 덕분에 파티를 열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여자 선수들의 에비앙 모임도 이제는 옛일이 됐다. 2006년 대회를 끝으로 에비앙 마스터스도 일요일에 최종 라운드를 치르는 것으로 일정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1년에 한 번 한국 선수들끼리 모여 화합을 다지는 행사였는데 이제는 그런 행사를 열 수 없으니 아쉬워요. 한국 선수들이 너무 많아진 탓도 있지요.” 프로골퍼 A의 말이다.

올해도 에비앙 마스터스는 같은 자리에서 열렸다. 공동선두로 대회를 마쳤던 최나연이 세 번째 연장전 끝에 스웨덴의 헬렌 알프레드손에게 져 눈물을 흘리던 장면은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전 같으면 박세리 같은 고참 선수들이 후배들을 불러 놓고 술잔을 기울이며 위로해 줬겠지만 올해는 그런 행사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선수들은 대회가 끝나자마자 공항으로 이동해 브리티시 여자오픈이 열리는 영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것이다.

마침 브리티시 여자오픈 마지막 날 경기가 열리는 아침이다. 한국 선수들의 에비앙 모임은 사라졌지만 오늘 밤 영국에서 우승 축하 파티가 열리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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