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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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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12면

1 석회암반 언덕 위의 중세도시 생테밀리옹. 높다란 종탑이 도시의 중심이다. 왼편 언덕엔 생테밀리옹에서 둘뿐인 그랑 크뤼 특A 와인을 생산하는 샤토 오존이 보인다

프랑스 보르도는 와인의 본고장이다. 세계 와인의 2.5%를 생산한다. 포도밭 넓이는 세계의 1.5%인 데 비하면 꽤 많다. 양이 많은 것만으로 본고장이라 하는 건 낯간지러운 얘기다. 보르도 와인은 양보다 전통과 품질을 자랑한다. 세계의 애호가들이 보르도 출신을 여전히 와인 족보의 중심에 올리는 이유가 품질, 바로 맛 때문이다. 메도크, 오 메도크, 포이약, 마르고, 그라브, 소테른, 바르삭, 앙트르 되 메르, 생테밀리옹, 포므롤…. 이름만 들어도 입에 침이 고이는 동네들 아닌가.

프랑스 와인의 본고장 ‘보르도 & 생테밀리옹’

그래도 보르도에 가서 와인만 찾아다니면 절반의 여행이 되고 만다. 나머지 반은 올드 보르도와 생테밀리옹의 골목길을 걸으면서 채워진다. 9세기에 착공한 석굴 교회,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중세 마을과 옛 골목을 누비는 자동차들, 200~300년 전 와인 네고시앙의 아파트와 와인 창고…. 1000년 세월이 현재와 함께 호흡하며 거기 살아 있다. 유적이 밀집한 생테밀리옹과 보르도는 1999년과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각각 등재됐다.걷다 날이 저물어 쉬고 싶으면 17세기에 지은 샤토(성)로 가 만찬을 즐기고 400년 전 영국풍을 간직한 방에서 하룻밤 묵어 보자. 여행 120% 만끽 코스다.

2 올드 보르도의 옛 금융가 앞에 조성한 ‘물의 거울’이 빚어내는 비경이 발걸음을 잡는다. 창의적 상상력의 힘이 전율처럼 느껴지는 현장이다

올드 보르도:고색창연한 골목길 따라 한나절 산책
프랑스에서 여섯째로 큰 도시 보르도는 아퀴텐 레지옹 지롱드 데파르망의 수도다(레지옹·데파르망은 지방행정 단위). 시내 인구가 23만 명 남짓이지만 17~20세기 초 프랑스 대표 무역항이었다. 식민지 교역과 와인 수출로 호황을 누렸던 덕에 시내는 육중한 석회암을 쌓아 올린 석조전이 즐비하다. 보르도는 지금도 와인의 대명사이고 지롱드를 대신하는 지명이다.

북위 45도 근방인 이곳은 여름 해의 꼬리가 길어 오후 10시쯤 땅거미가 진다. 살구색이 바랜 듯한 석회암 건물 벽이 석양을 머금으면 도시는 술 맛을 자극하는 홍조로 채워진다. 그래서인지 8시는 돼야 문을 여는 레스토랑에선 누구나 식전주(食前酒·아페르티보)로 길고 긴 저녁식사를 시작한다.

3 200여 년 전 와인까지 비장하고 있는 샤토 루덴의 셀러. 병 위로 뽀얗게 먼지가 내려앉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4 17세기에 지어진 샤토 루덴의 침실은 설립자의 고향인 영국풍이다. 지금은 호텔로 개방하고 있다 5 중앙광장에서 굽어본 생테밀리옹 마을의 집들이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의 그루터기인 양 황토색 기와지붕을 이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보르도 구도심은 도시 북쪽을 감싸고 흐르는 가론강 수변을 따라 4.5㎞에 걸쳐 집중돼 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곳 150㏊ 지역이 ‘올드 보르도’다. 강변 핵심 지구는 75년 항구가 강 맞은편으로 옮겨간 뒤에도 20년간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 일종의 보세구역이었다. 기능을 잃은 항구에 사람 출입까지 뜸해 늘어선 석조전에는 화려했던 영화 대신 세월의 더께만 쌓였다.

침체를 털어낸 이는 알랭 쥐페 시장이다. 95년 시장에 당선되자 반대를 물리치고 보세구역 철망을 걷어냈다. 하역장과 시설물을 철거하고 폭 100m 강변 부지에 도로를 내고 산책로와 꽃밭이 들어선 시민공원을 꾸몄다. 노면전철이 다니는 철길을 내고, 중간 중간 관광안내소도 설치했다.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망루 요새 겸 성문으로 올드 보르도를 지켜온 ‘포르트 카이유’도 몸통만 남기고 양 날개 성을 헐어 차가 다니도록 길을 냈다. 주인들에게 일일이 허락을 얻어 옛 건축물의 묵은 때를 벗겨내고 관광자원으로 개방하자 18세기 유럽의 거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찬사와 함께 세계의 관광객이 모였다.

백미는 상공회의소 광장 길 건너에 만든 평면분수 ‘물의 거울’이다. 커다란 풀장 넓이로 길보다 높게 단을 쌓고 판석을 깔아 조성한 분수는 물을 높이 뿜어 올리지 않는다. 물이 판석 틈으로 몽글몽글 샘솟아 바닥에 퍼지거나 때로 짙은 안개를 피어 올린다. 물기가 바닥에 번지면 길 건너 올드 보르도의 웅장한 석조전이 판박이처럼 수면에 내려와 박힌다. 아이들은 그 광경에 환호하며 뛰어들고 누워 뒹굴고, 덩달아 신이 난 어른들과 개들도 뒤엉켜 뛰어다닌다. 물의 거울 속에서도 그렇게 뛰논다.

2007년 보르도를 찾은 관광객은 250만 명, 절반이 외국인이다. 관광수입은 1억 유로(약 1700억원)로, 와인 다음으로 중요한 수입원이 됐다. 프랑스 총리를 역임한 뒤 보르도 시장에 당선된 쥐페는 2006년 재선돼 14년째 연임 중이다.
올드 보르도의 골목길은 200~300년 전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질 듯 고색창연하다. 기웃기웃 걷다 보면 노천카페가 늘어선 길도 있고 명품거리도 있다. 옛 교회당도 있고 이름만 같은 노트르담 성당도 있다. 3시간이면 중요한 곳은 모두 돌아볼 수 있다.

걷기 힘들면 보르도 중앙광장으로 가면 된다. 보르도 여행은 여기가 원점이다. 모든 대중교통이 출발하고 다시 모인다. 광장 한편에 보르도 관광청과 와인협회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관광청에 가면 모든 여행정보와 편의를 얻을 수 있다. 무개버스나 자전거를 이용한 시내관광부터 와인과 관련한 모든 패키지 상품을 안내받고 예약할 수 있다.

생테밀리옹:오밀조밀 마을 사이 들어선 포도밭 풍경
도르도뉴 계곡을 내려다보며 석회암 지대 언덕에 자리한 생테밀리옹은 1300년 고도다. 말만 1300년 고도가 아니다. 1000년 넘은 건축물이 지금도 현역이다. 와인으로도 보르도에서는 메도크와 쌍벽을 이룬다. 석회암이 녹아든 토양은 생테밀리옹 포도를 키우고, 그 포도가 메도크의 자갈 토양에서 자란 것과는 다른 독특한 맛의 와인으로 익는다. 오존, 슈발 블랑, 피작, 페트뤼스, 르팽 같은 명작이 이 땅의 산물이다.

여기 석회암이 세계문화유산 두 곳을 만들었다. 올드 보르도를 장악한 석조전의 80%는 생테밀리옹 석회암으로 지었다고 한다. 생테밀리옹의 상징인 수십㎞의 지하 동굴과 석회암반에 굴을 파고 만든 모놀리스(단일 석재) 교회(9~12세기), 동굴교회 위에 세운 133m 높이의 아득한 종탑(12~15세기)도 석회암이 만든 유적이다. 종탑의 석회암 기단부는 오랜 세월 빗물에 녹아 진흙을 손가락으로 문지른 듯 푹푹 파여 있다.

보르도에서 서북쪽으로 35㎞ 떨어진 생테밀리옹은 우리나라 읍보다 작은 아담한 마을이다. 8세기에 수도사 에밀리옹이 오면서 마을의 역사는 시작됐다. 767년 눈먼 여인에게 광명을 찾아주는 기적을 행했다는 수도사는 죽어 성인으로 추앙되고, 그를 기려 마을 이름을 생테밀리옹이라 했다. 12~15세기에 걸쳐 많은 건축물이 지어졌고 오늘날까지 그 골격이 유지되고 있다.

중심지는 걸어서 돌아도 1시간이면 넉넉하다. 그러나 마을을 지키던 일곱 개의 성문과 마을 지하에 거미줄처럼 얽힌 동굴까지 다 살펴보려면 한나절은 걸린다. 처음 눈길을 잡는 풍경은 종탑 아래 마을 중앙광장 담에 서서 굽어보는 포도밭 평원이다. 생테밀리옹 마을에 뿌리를 두고 끝없이 물결치는 푸른 구릉은 사람의 눈길이 따라갈 수 없는 곳까지 달려가 하늘에 이른다. 수백 년 세월을 견딘 주택들은 연한 황토색 석회석 벽에 붉은 기와를 얹고 언덕을 따라 오르며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골목길들은 경사가 심하고, 세월에 닳은 길바닥 돌은 맨발로 걷고 싶은 유혹을 자꾸 일깨운다. 외적이 침입하면 숨으려고 만든 지하 동굴은 현재 와인 저장고와 갤러리로 활용되고 있다. 온도가 연중 14~15도로 일정하기 때문에 ‘작품’ 저장에 안성맞춤이다. 관광안내 책자를 보니 재미있는 주의사항이 있다. 길이 미끄러우니 하이힐은 피하고 여름에도 여벌의 스웨터를 준비하라는 것. 너비 2m 또는 무게가 6t이 넘는 차량은 마을에 진입할 수 없다는 안내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곳 여행도 중앙광장 한편에 있는 관광청사무소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여행에 필요한 정보와 자료가 다 모여 있다. 자전거를 빌려주고 각종 여행상품도 준비하고 있다. 포도밭 순환 꼬마열차(35분 5.5유로), 가이드와 걸어서 포도밭 돌기(2시간 10유로)를 추천한다. 여기는 메도크에 비해 규모가 작은 샤토들이 밀집해 있어 풍경은 오밀조밀 정겹고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다.


더 자세한 정보는…
▷보르도 와인협회 www.bordeaux.com(33-5-56-00-43-42)
▷메도크 와인협회 www.medoc-bordeaux.com(33-5-56-48-18-62)
▷보르도 관광청 www.bordeaux-tourisme.com(33-5-56-00-66-00)
▷보르도 와인스쿨 http://ecole.vins-bordeaux.fr(33-5-56-00-22-85)
▷생테밀리옹= 관광청 www.saint-emilion-tourisme.com(33-5-57-55-28-28)
▷생테밀리옹 와인협회 www.vins-saint-emilion.com(33-5-57-55-50-50)
▷샤토 루덴(Ct. Loudenne) www.lafragette.com(33-5-56-73-17-80)
▷샤토 다르쉬(Ct. d’Arche) www.chateaudarche-sauternes.com(33-5-56-76-66-55)
▷프랑스 농식품진흥공사 한국지사 www.sopexa.co.kr(02-3452-9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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