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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로가는길>전남 돌산도 향일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돌산대교를 건너면서부터 향일암(向日庵)가는 길은 시작된다.그래서인지 암자는 꼭꼭 숨은 듯 보이지 않고 이런저런 섬의 풍광이 먼저 나타난다.푸른 비단 같은 한려수도 한자락이 드러나기도하고,포구에서 졸고 있는 목선들이 보이는가 하면 ,갓김치 공장이 나타나 입에 침을 돌게 하고,가로수로 심어진 동백들이 붉은하품을 터뜨리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윽고 암자의 추녀끝이 보이는 임포에 도착,바다를 응시해본다.일망무제의 바다를 보니 솔직히 마음이 좀 찔린다.명부전의 업경대(業鏡臺)같은 거울이 되어 욕심에 찌들고,어리석고,화 잘내는 나그네의 모습을 여지없이 비춰주고 있기 때문이 다.암자 입구에는 거대한 두개의 바위가 「좁은 문」처럼 버티고 있다.한 사람이 지날 수 있을 만큼만 열려 있는데 왜 그럴까.암자 밖에서 욕심의 체증을 감량하고 들어오라는 말없는 바위의 경책인 성싶다.그런 때문인지 바위 앞에 청청하게 서 있는 무욕(無慾)의대나무 한 그루가 싱그럽기만 하고.향일암은 신라 선덕여왕 13년(644년)원효스님이 창건할 당시엔 원통암(圓通庵)이라고 부르다가,이후 고려 때는 금오산의 산명을 따 금오암(金鰲庵),조선 숙종때에 다시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고 한다.관음 기도처(祈禱處)인지 암자에는 관음전(觀音殿)이 두 동 있는데 어느곳에서나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특히 아래 관음전 모퉁이에 숨은동백은 다른 곳보다 꽃망울을 더 빨리 터뜨리는데 수줍은 꽃잎하고 서로 윙크하는 은밀함도 조촐한 정복(淨福)이다.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암자의 진면목은 일출 광경이라는 비구니의 자랑이다.그런 풍광은 스님들의 간절한 기도이기도 한 범종 소리가 바다 멀리 퍼져나간 후부터 시작된다고 한다.범종의 기별을 듣고 난 태양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무대에 올라 금발을 휘날리며「날마다 좋은 날」이라고 광명의 신천지(新天地)를 펼쳐보인다는 것이다. 위 관음전은 원효스님이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법당의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두 비구니가 기도를 하고 있다.저 어린 수행자는 관세음보살을 향해 무슨 기도를 하고 있을까.얼굴은 옥처럼 해맑고 두눈은 바닷물이 든 듯 푸른 빛이 감돌 고 있다.
그러고 보니 수행과 기도란「맑은 눈」을 지키고자 하는 간절한 그 무엇일 것만 같다.
돌산대교에서 임포까지 승용차로 30분,다시 암자까지는 걸어 20분정도 걸린다.(0662)43-9060.
정찬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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