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산마을>인제군 한계리

중앙일보

입력 1996.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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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한계령(1천4)은 우리나라에서 해발 1천를 넘는 몇 안되는 고개 가운데 하나다.한계령은 백두대간에 있는 설악산과 점봉산의산마루에 걸터 앉아 인제와 양양을 가른다.
강원도인제군북면한계리(1,2,3리)는 한계령 정상에서 인제쪽으로 내려가는 완만한 고개를 따라 드문드문 터를 잡고 있다.가장 낮은 지역도 해발 4백를 웃도는 고지대마을이다.
지금은 한계령에 44번 국도가 번듯하게 놓여있어 산마을의 정취를 만끽하기 힘들지만 20년전만 해도 첩첩산골이었다.심마니 마을이 있을 정도였다.한계리는 인제군에서 독특한 지역이다.험한산에 둘러싸여 있는 인제군은 「은둔의 땅」이라 불렸고 간혹 「배타적」이란 소리까지 들었다.그러나 한계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말은 오해다.
한계리 사람들은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麻衣)태자」를 흔쾌히 받아들였고,그를 역사속에서 다시 살렸기 때문이다.
이희태(65.한계3리)씨는 『마의태자는 935년 10월 하순경주를 떠나 추위와 눈보라가 심한 겨울에 지금의 한계리에 도착했다』며『이들 일행이 몹시 추웠던 것을 되새겨 한계(寒溪)란 이름을 붙였을 것』이라고 말했다.마의태자는 신라 마지막 왕 56대 경순왕의 9남3녀 가운데 첫째 왕자로 성이 김(金),이름이 일(鎰),자가 겸용(謙用)이었다.경주를 떠난뒤 나라가 망한것을 자책하고 조국광복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삼베옷을 많이 입어 「마의」라는 이름이 붙었다.전 설에 따르면 마의태자는 21세에 경주를 떠나 신라가 망한지 1백년이 되던 1036년,1백21세의 나이로 죽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한계령 정상에 있는 한계산성은 전설을 현실로 끌어내린다. 산성은 한계령 중턱에 있는 옥녀탕계곡을 따라 약 3㎞를 올라가면 있다.동국여지승람에는 성벽의 길이가 6천2백57척(1척=30.3㎝),높이가 4척으로 규모가 대단했다고 적혀있다.그러나 현재는 1천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청태가 낀 길이 73.6,높이 5.2의 성터만 남아있다.한계산성 위로 올라가면 마의태자가 머물렀다는 대궐터가 나온다.
산성을 짓는데 쓰인 기와는 한계2리에서 만들었다.한계2리는 와천리(瓦川里)라고도 부르는데 이곳에서 기와를 구웠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한계리 사람들은 평소엔 조용히 삼을 캐고 꿀을 따지만 마의태자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나 한마디씩은 하고 싶어한다.1천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더러는 처음과 바뀌고 새로 만든 이야기도 있지만 망국의 왕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춘원 이광수는 『소설 마의태자』에서 마의태자로 하여금 『열두번 죽으려도 죽지 못하고 살아있는 내 몸이 부끄러워라….』고 되뇌게 하고 있다.
반은 죽고 반은 산듯이 망국의 한을 되씹었던 마의태자는 한계리에서 얼마나 위안을 받았을까.
글=하지윤.사진=임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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