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름다운 룸펜 청년의 탄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0호 05면

요즘 문화계에 불고 있는 모던 보이 유행은 본래 출판에서 시작됐다. 10여 년 전부터 출판계에 20세기 초 한국 풍속사 관련 책들이 붐을 이뤘다. 새로운 서구 문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고 생각은 물론 감정까지 바꾸길 원했던 신여성과 모던 보이, 그리고 그들이 누비던 경성이라는 공간과 시대를 조사하고 기술하는 학문을 ‘고현학(考現學)’이라 이름 붙이기도 하고 ‘미시사’로 분류하기도 한다.

-한반도 최초의 현대인에 주목한 출판계

이런 새로운 연구 흐름은 이전의 한국 근대사 연구와는 확연히 달랐다. 대한독립이나 무산계급 혁명 같은 거창한 이상보다는 돈·사랑·권력·명예 같은 속된 욕망에 초점을 맞췄다. 주인공도 변했다. 역사적 인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의 사생활이 관심 대상이었다. 시시콜콜한 사실을 집어내 사진이나 인쇄물 등 시각 자료를 풍부하게 삽입하고 쉽게 잘 읽히는 글솜씨를 겸비한 책들은 대중성도 획득했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물이지만 의무감에서 작업하는 게 아니라 즐기며 한 공부였으니, 주로 에로틱해서 짜릿하고 그로테스크해서 놀랍고 난센스에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들을 선별한 것도 관심을 모은 요인이 됐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같이 당시 자료에서 그대로 인용한 촌스러운 표기법이나 표현법이 널리 회자되기도 했다.

패션·연애·가정 같은 소재를 주로 다뤘지만 정치·사회적인 주제도 새로운 시각에서 발굴하거나 엮였다. 전봉관씨가 일제시대 한반도의 ‘골드 러시’ 현상에 대한 책 『황금광 시대』(살림 펴냄)를 쓴 계기는, 1997년 IMF의 충격파 직후 한국에 불어닥친 벤처 열풍과 1929년 대공황 직후 조선을 뒤흔든 금광 열풍이 놀랄 만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고서였다. 전씨는 “황금광 시대 금을 찾던 사람들의 운명을 훔쳐보며 현대인의 운명을 예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최근 푸른역사에서 『문학청년의 탄생』과 『부랑청년 전성시대』를 동시에 펴낸 소영현씨는 이런 대중적 풍속사 발간 붐의 영향을 받은 저자이기도 하지만, 사태를 보다 비판적이며 포괄적으로 보고자 하는 점에서 다르다. 현대적 인간이 되기 위해 우선 서구식 복장으로 갈아입고 서양의 기호품에 취미를 들여야 했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 부러움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이 문제적 신세대를 ‘미적(美的) 청년’으로 호명하며 그들이 진정 누구였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분석한 것이다.

소씨는 근대 청년 문화를 다룬 기존 책들이 매번 더 정교해지지 못한 채 반복 출판되고, 30년대에만 관심이 쏠리는 현상을 보면서 20년대부터 시작된 기원을 밝혀줄 필요성을 느꼈다. 과거의 작업들이 자료와 작업 자체의 가치를 드러내려는 데 신경을 썼다면, 이제 이런 작업들에 대한 “가치 평가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소씨는 진단한다.

그래서 『문학청년의 탄생』은 그간 선정적 호기심에 기대 에피소드 나열에 그쳐왔던 일제시대 풍속사에 대한 관심을 ‘청년’이라는 주제를 통해 종합·정리하면서 이론적·철학적 근거를 마련한다. 한편 『부랑청년 전성시대』에서는 1900~20년대 대표적 인간형으로 선택된 ‘청년’이 불려 나오고 만들어지며 분류되는 구체적 장면들을 재구성해낸 뒤 그들이 근대를 어떻게 내면화하고 자기를 규율했는지를 그린다.

흔히 ‘미적 청년’ ‘부랑 청년’ ‘예술가 청년’이라고 하면 계몽적 주체에 완전히 반대인 낭만적 주체, 정치에 관심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를 의식하고 반영하는, 연결고리로 단단히 묶인 관계다. 저자는 계몽주의자 이광수와 예술지상주의자 김동인의 관계를 보기로 드는데 국문학자인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사적인 동기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흔히 현대적 인간이 가지는 건전함과 노동에 대한 강박의 이면에서 미적인 인간이 현대적 인간의 또 다른 측면이라는 점을 밝히고, 이른바 ‘룸펜’의 윤리적 정당성을 찾고 싶었다”는 것이다.

소씨는 우리가 과거와 다시 만나는 목적이 “오늘을 꾸짖을 수 있는 귀감적 사례를 발견하는 것만은 아니며, 과거와 만나는 과정은 앞선 길을 지우면서 다시 그리는 덧씌우기의 과정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