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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기자의 환경 이야기] ‘지구를 살려라’ 시아노박테리아의 경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서울 아시안게임을 앞둔 1986년 8월 부산시는 수영천을 살리자고 호소하고 나섰습니다. 탁한 수영천 탓에 요트경기장인 수영만의 오염이 심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민들 노력으로 물은 맑아졌고, 그해 가을 서울 아시안게임의 요트경기는 탈 없이 치러졌습니다.

다음 달 8일 베이징 올림픽이 열립니다. 무더운 날씨와 답답한 매연 때문에 순조롭게 치러질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요트경기가 열리는 칭다오 해안의 녹조(사진)입니다. 5월 말 시작된 녹조를 걷어내기 위해 1200여 척의 배와 1만여 명의 인민해방군·자원봉사자가 동원됐지만 여전히 50㎢는 짙푸른 녹조로 뒤덮여 있습니다.

칭다오에서 발생한 녹조는 세균과 식물의 중간인 시아노박테리아가 일으킨 것입니다. 번식 속도가 워낙 빨라 조건만 좋으면 금방 호수를 덮습니다. 1990년대, 여름철이면 소양호·대청호·팔당호 같은 국내 상수원도 이들로 뒤덮였습니다. 수돗물에서 비린 냄새가 나도록 만들기도 했습니다.

녹조가 생기는 것은 물속에 질소·인 같은 영양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바로 ‘부(富)영양화’죠. 논밭에 뿌린 비료나 가정·축사·공장에서 내보낸 오·폐수가 원인입니다. 햇빛이 잘 비치고 기온도 높은 데다 성장을 돕는 비료 성분까지 충분하니 칭다오 해안에는 녹조가 자라기에 부족한 게 없었던 셈입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오희목 박사팀은 지난해 이런 녹조를 막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환경부의 신기술 인증까지 받았습니다. 초음파로 시아노박테리아 세포 속의 공기주머니를 터뜨리는 것입니다. 밤엔 물 아래에 있다가 광합성을 위해 낮에는 물 표면으로 떠올라야 하는 이놈들이 그걸 못하게 돼 번식도 어려워진다는 원리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녹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연못에나 적용할 수 있습니다.

시아노박테리아는 35억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했습니다. 산소가 없던 지구 대기에 광합성으로 산소를 가득 채운 게 이들입니다. 인간이 지구상에 살 수 있도록 바탕을 마련했던 시아노박테리아가 녹조를 일으키는 것은 인류에게 깨끗한 지구를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아닐까요.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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