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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한강 어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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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6면

중.고등학교 시절에 누구나 읽었을 윤선도(尹善道)의 시조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현보(李賢輔)의 『어부사(詞)』를 거쳐 고려때의 『악장가사(樂章歌詞)』에 수록된 『어부가(歌)』에까지 이른다.한데 이들 가사(歌詞)는 모두 어부들의 삶을 주제로 삼고 있으면서도 등장하는 어부들은 한결같이 가어옹(假漁翁)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고기잡이를 생존의 수단으로 삼는 진짜 어부가 아니라 고기를 잡으며 자연을즐기고 완상하는 사대부 계층이라는 얘기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탈해왕(脫解王)의 본래 생업이 고기낚시였으며,당시 동해안에서는 이미 낚시어업이 성행했음을 밝히고있어 어부의 역사를 대충이나마 짐작하게 한다.하지만 문학작품이나 회화(繪畵)에 등장하는 어부들의 모습은 생계 유지의 방편으로 생명의 위협조차 무릅쓰고 자연과 싸우는 치열한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중국 주(周)나라때 강태공(姜太公)의 고사(故事)에서 비롯된 어부의 이미지와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나 그밖의 여러 한시(漢詩)에 나타나는 어부들은 대개 고답적이며 신선같은 삶 을 사는 사람들로 묘사돼 있으니 진짜 어부들이 그 대목들을 읽는다면 고소를 금치 못할지도 모른다.
지금의 낚시꾼들이 작품속에 나타나는 그같은 어부의 이미지에 걸맞을 듯싶지만 고기를 잡는 일이 생계와 직결돼 있는 어부들의입장에선 낚싯대를 드리우고 명상에 잠겨있는 모습이 멍청해보이기까지 할 것이다.자연을 어부들의 어쩔 수 없는 투쟁대상으로 본다면 생태계와 수산자원 보호를 위한 어로(漁撈)규제가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걸림돌이다.
조선시대 초에 이미 강이나 하천에서 멋대로 고기잡이하는 것을규제했다는 기록이 있거니와 오늘날 그 규제가 더욱 까다로워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아직도 한강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있다는 보도는 얼핏 낭만적인 느낌까지 주지만 그것이 단순한 낚시가 아닌 생업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20여명에 불과한 이들의한결같은 소망은 어로제한을 부분적으로나마 풀어달라는 것인데,어족보호에 큰 지장이 없다면 이들이 떳떳하게 고기잡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낭만적으로 비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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