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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멜로디에 귀 기울여 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9호 05면

“미~솔~ 현우야, 선생님 봐. 이것 봐. 미~솔~.”
쭈뼛쭈뼛 고개를 들지 못하는 김현우(중3·가명)군에게 선생님이 끈질기게 음계를 독려한다. 피아노 앞 선생님과 현우 사이엔 작은 탁자 하나. 탁자 위엔 형형색색의 실로폰이 놓여 있다. 현우는 선생님이 치는 음계에 맞춰 작은 봉으로 색색의 실로폰을 친다. 차츰 재미를 붙인 현우가 멋대로 음을 바꿔 가며 드리자 선생님도 화합하듯 멜로디를 따라준다. 청아한 실로폰과 경쾌한 피아노 소리가 어울린 짧은 즉흥 연주의 순간이다.

음악치료

정신지체에다 자폐 증상이 있는 현우는 주 2회 이곳 ‘오정원 음악치료연구소(부천시 심곡동·032-657-8075)’에서 음악치료를 받는다. 45분간 진행되는 치료 수업은 현우의 닫힌 마음을 여는 과정이다. 오정원 원장은 “처음엔 낯선 사람과 눈도 안 마주치고 자기 안에만 갇혀 있던 현우가 요즘은 서서히바깥에 반응하기 시작한다”며 “오늘은 똑같은 음계가 아니라 새로운 멜로디를 알아서 쳐 보는 등 훨씬 좋아졌다”고 기뻐했다. 음악교습학원을 겸한 이연구소에는 현재 7명의 발달장애 학생이 정기적인 치료를 받고 있다.

“모든 질병은 음악적 문제다. 모든 치료는 음악적 해결이다.”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 노발리스의 말은 다소 과장됐을지 몰라도 음악과 의학적 치료 간의 밀접한 관련성을 일러 준다. 음악이 뇌의 구조적 작용으로 가능한 신경 활동이기 때문이다. 요즘 ‘뮤직 테라피’라는 이름으로 일반인에게도 보편화된 음악 치료는 넓게는 음악 감상 혹은 연주를 통한 내면의 치유이지만, 원론적으로는 음악의 치료 효능을 과학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이다.

공식적인 음악 치료의 개념이 생긴 것은 제1, 2차 세계대전 때. 보훈병원의 부상병들에게 음악을 들려줬더니 신체적·정신적 고통은 물론 일부 생리적반응(맥박 수나 혈압 등)까지 양호해졌다는 것이다(『뮤지코필리아』, 올리버 색스 지음, 알마 펴냄). 1944년 미국 미시간주립대에 최초로 음악치료 프로그램이 개설됐고, 국내에선 97년 2월 숙명여대에 음악치료대학원이 처음 문을 열었다. 올 2월 숙명여대 석사 논문을 마친 오 원장도 실은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음악치료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제가 원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편이었거든요. 음악치료를 통해 스스로 극복한 뒤로 다른 이들에게도 그 길을 열어 주고 싶어서 치료사가 됐어요.”
일반 음악교습과의 차이점에 대해 묻자 “연주 실력 향상이 아니라 현재 처한 문제점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요약했다. 예컨대 주의력이 부족하다면 음악을 통해 집중력을 연마한 뒤 다른 학습에서도 집중력을 높이는 식이다. 미술·연극·무용 등 다른 분야가 아닌 음악치료를 택하는 이들은 대체로 다른 것보다 음악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 편이라고 한다.

10이 넘어가는 숫자 덧셈도 어려워하는 신새벽(고2)군은 5년 배운 피아노만큼은 일반 학생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악보도 곧잘 읽고,색소폰·하모니카 등 다른 악기 연주에도 관심이 많다. 신군의 어머니 박수현(42)씨는 “피아니스트가 돼서 연주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기대하긴 어려워도 재능을 살려 음대에 보내고 싶다”며 “피아노를 칠 때만큼은 누구보다 행복해하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말했다.

음악치료가 신군에게 ‘정상적인’ 생활을 선사할 순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엿보는 기자의 시선도 느끼지 못할 만큼 집중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신군의 표정은 여느 또래의 얼굴보다 밝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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