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예술도 되고 치료도 되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9호 05면

오정원 음악치료연구소에서 음악치료 중인 학생이 교사의 도움을 받아 가며 피아노를 치고 있다.오정원 음악치료연구소에서 음악치료 중인 학생이 교사의 도움을 받아 가며 피아노를 치고 있다.오정원 음악치료연구소에서 음악치료 중인 학생이 교사의 도움을 받아 가며 피아노를 치고 있다.학생의 정신연령은 5~6세에 불과하지만 악보를 무리 없이 읽어 내는 등 음악에선 대단한 재능을 보인다. 사진 신인섭 기자

내 몸이, 내 마음이 하는 말을 듣는다-무용·연극치료 현장

예술치료는 20여 년 전부터 미국 유학파를 통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으나 2000년 초반 학회와 연구소들이 설립되면서 비로소 제 구실을 하게 됐다.4~5년 전부터 병원과 사회복지기관을 중심으로 붐을 이뤄 현재 국내 대학원의 예술치료 관련 학과가 30여 군데에 이른다. 원광대 정동훈 교수는 “한국예술치료학회 회원만 2500여 명, 그 외 학위 취득자와 교육과정 이수자가 수천 명으로 추산되는데 음악·미술·연극·무용 등으로 전공이 세분화되어 있다”고 전했다.

6월 28일부터 7월 2일까지 댄스테라피협회(kdmta.com, 02-744-5157)에서 주최한 워크숍 현장은 한국 예술치료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도심의 혼잡함이 가라앉은 주말 아침, 서울 장충동 한 빌딩의 널찍한 마루 강당. 미국의 무용치료사 린 코실랜드와 워크숍 참가자 30여 명이 그리스 음악에 맞춰 둥글게 원을 그리며 가벼운 민속춤을 춘다. 이어서 고래 울음소리를 들려주며 마음의 평화를 구하는 몸짓을 만들어 본다. 두 사람이 함께 각기 느끼는 감정을 춤으로 나타내고 따라 하기(미러링), 그림동화책에 나온 부엉이와 딱따구리의 다툼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들어 보기 등이 이어졌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참가자 모두 맨발에 편한 옷차림이고 표정은 명랑하다. 협회의 최정아 연구원은 “심리치료라고 하면 주로 상처를표출하는 우울한 분위기를 예상하는데, 춤의 특성상 활기찬 분위기에서 가벼운 해결 작업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한다.

워크숍에 참여한 백경희(30·사회복지사)씨는 “1년 전 상담가로 일하며 많이 지쳤을 무렵 처음 무용치료를 접하게 됐다. 말이 아니라 몸짓으로 의사소통이 이뤄진다는 점, 답답하다·시원하다 등의 감정을 애써 언어로 끌어내지 않아도 내 몸이 자연스럽게 그걸 표출하고 상대방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절실하게 와 닿았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을 경영하던 40대 중반의 서현정씨는 연극치료사가 된 사연을 들려줬다. 서씨는 2년 전, 여름마다 열리는 ‘아동을 위한 연극치료 캠프’를 후원하는 기업의 일을 하게 됐다. 캠프에서는 어른을 대상으로 봉사자도 모집하고 있었는데 학생·교사·주부·연극동아리 회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원하는 걸 봤다.

서현정씨도 내친김에 열두 살 난 참가자 주완이를 1박2일 동안 온전히 돌보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자폐증상 때문에 좀처럼 프로그램에 적응하지 못하고 의사소통마저 어려웠던 낯선 아이와 어느덧 마음을 트고 함께 종이비행기를 날리면서 큰 감동과 함께 ‘바로 이거야’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길로 사업을 접고 연극치료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는 현재 연극치료연구소(koreadramatherapy.co.kr, 02-3478-0975) 상임이사로 일하며 8월 16일 다시 열리는 ‘2008 연극치료 캠프’를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장애인·독거노인·이주노동자·노숙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예술치료 프로그램에 봉사자로 참여한 중산층이 오히려 스스로 치유되는 경험을하는 사례는 예술치료 체험담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얘기다. 어느 연극 제목처럼 ‘모두가 병들었으나 아무도 아픈 줄 모르는 사회’이기 때문일까.

연극치료사 이지은씨는 “연극이라는 종합예술 자체가 참여자 개개인에게 치유의 기능을 하는 경향이 있다”며 거기에다 “아픈 과거의 자신을 분석하고 헤집는 심리상담이 부담스러운 경우 현재에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에너지에 집중하는 연극치료를 선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출간된 『감정치유-상처받은 감정을 돌보는 통합적 미술치료』(오연주 옮김, 프로젝트409 펴냄)에서 지은이 루시아 카파치오네는 “감정도 하나의 언어처럼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사별·이직·재해 등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치유 과정 중에 소박한 예술 도구를 이용해 감정 언어를 쉽게 인식하고 표현하는 사례들을 들려준다. 최근 원주교도소의 인문학 강좌와 같이 문학 작품을 읽거나 철학 공부 등을 통해 심리치료 효과를 거두고자 하는 문학치료 역시 학계와 시민단체의 새로운 활동 영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