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구석구석]<18>믿기지 않아, 이런 길 있다는 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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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는 한라산, 앞에는 끝없는 바다. 걷다 힘들면 신발 벗고 아무 데서나 놀면 된다. 유채꽃 일렁이는 올레길은 이 땅의 축복이다.

여행의 끝은 늘 집이었다.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눈물겨운’ 집.

집으로 가는 골목길을 뜻하는 제주방언 ‘올레’.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매달 하나씩 열고 있는 ‘올레길’은 집으로 가는 세상 모든 길과의 만남이다. 숲과 바다와 들과 마을, 강과 오름들 사이에서 집들의 표정은 다채롭다. 빈 들판 끝 혼자 선 쓸쓸한 뒷모습이었다가, 바다를 향해 나지막이 엎드린 다소곳함이다가, 오름 아래 어깨를 기대며 늘어선 넉넉함이기도 하다. 그 집들 사이로 길은 저 홀로 휘었다 굽이쳤다 곧추섰다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이어진다. 아직 들키지 않은 민얼굴의 청순한 제주가 그곳에 있다.

해녀의 싱싱한 인사 “폭삭 속았수다” 

꽃향기 번지던 4월. 처음으로 올레길을 걸었다. 올레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길이었다. 아무 데서나 배낭 내려놓고 놀기 좋아하는 탓에 걸음은 느렸다. 그렇게 중문 근처 바닷가에서 해녀들의 좌판을 기웃거릴 때였다. “정숙씨, 올해 나이가 몇 살이우까? 예순일곱이우까?” 제주에서 나고 자란 중년 사내의 질문에 일흔다섯의 정숙씨가 답했다. “육십일곱이면 이제 시집이라도 갔게. 버르장머리라고는 파리보뎅이만큼도 없는 놈아.” 목숨을 던지는 노동으로 일생을 건너온 늙은 해녀의 말끝에는 넉살이 넘실거렸다. 고된 물질로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가족의 생계를 일구어 온 여자들이었다. 늙어도 여전히 젊고 싱싱한 그녀들이 인사를 건넸다. “폭삭 속았수다(수고가 많습니다).” 고작 걸음으로써 견뎌가던 내 삶이 문득 부끄러워졌다.

제주의 푸른 물에서 속살을 키워온 백합과 성게로 배를 채운 뒤 다시 걸었다. 중문 지나 선사유적지 가는 길의 조른모살(작은 모래사장이라는 뜻의 제주방언)에 등을 대고 누웠다.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원을 그리며 절벽이 안겨왔다. 크고 넉넉한 원의 끝은 바다와 하늘로 열려 있었다.

“우주의 치마폭에 폭 감싸인 기분이네”라고 중얼거렸을 때 곁에 있던 그녀가 웃었다. 산티아고를 걷고 돌아와 올레길을 만들고 있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었다. 올레길에서 새삼스러운 것은 여자들의 힘이었다. 물질로 세상을 건너온 해녀들과 꿈을 현실로 일구어 내는 서 이사장과 그녀의 꿈에 무임승차하며 혼자서 혹은 둘이서 그 길을 걷고 있던 여자들. 세상에 강한 것은 약한 여자들인 걸까.

건들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바다 

썰물에 빠져나가지 못한 물이 바위웅덩이에 갇혔다. 혹시 고기가 있을까 사람들은 궁금하다.

두 달 만에 다시 만난 제주에는 그새 여름이 무성했다. 바다는 가르릉거리며 게으르게 늘어졌고, 귤나무에는 어느새 갓난아기 주먹만 한 초록색 귤들이 매달렸다. 올레길의 6코스는 화순해수욕장에서 시작된다. 퇴적암 지대를 지나 사구언덕을 넘어 산방산을 오른쪽에 끼고 걷는 길. 바다가 바짝 붙어 따라온다. 산방산은 거인이 벗어두고 간 중절모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린 왕자가 그린 ‘보아 뱀을 삼킨 코끼리’를 닮기도 했다. 그 길이 숨긴 작고 아늑한 해변과 마주쳤다. 역시나, 바다가 건들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그럴 때면 짐짓 못 이기는 척 농지거리에 답할 줄도 알아야 한다.

살짝 길을 틀어 해변으로 내려간다. 신발을 벗고, 양말도 벗어던지고, 파도의 희롱에 몸을 맡긴다. 벼랑 사이에 숨어 있는 이곳은 어린 연인들이 둘만의 밀애를 즐기기에 꼭 맞는 크기다. ‘연인들의 해변’이라고 이름 붙여준다. 모래 위에 꾹꾹 박아놓고 싶은 간절한 이름 하나가 없다는 게 아쉬울 뿐. 한 시절 잘 놀았다 싶으면 다시 신발을 꿰차고 길로 들어선다.

송악산으로 향하는 길, 바닷가 절벽들이 수상하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전쟁이 남긴 흉터다. 태평양전쟁의 끝 무렵, 일본은 미군의 본토 상륙에 대비해 제주도를 결사항전의 군사기지로 삼았다. 송악산 해안 동굴 진지는 바다로 들어오는 미군 함대를 향한 자살폭파 공격을 목적으로 구축된 곳이다. 물론 강제 동원되어 굴착 작업을 한 건 제주도민들이었다. 오십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은 바다는 평화롭기만 하다. 올레의 길은 때때로 아픈 역사를 정면으로 통과한다.

송악산을 오르는 길은 완만하다. 높이로 격을 따지지 않는 제주의 산들이 고맙다. 송악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산방산은 등을 잔뜩 웅크린 채 고개를 길게 뺀 거북이처럼 보인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가없는 물길만 가득하다. 조랑말들이 풀을 뜯고, 바다는 무심한 얼굴로 뒤척이고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오수에라도 들고 싶다. 한잠 자고 깨어나면 천 년의 세월의 흘러있을 것만 같다. ‘하아’ 깊은 숨을 내뱉으며 몸 안의 이산화탄소를 빼낸다. 그 빈자리로 산과 바다의 푸른 기운이 그대로 들어온다. 이대로 시간을 멈추고 싶은 풍경이다.

송악산을 내려오면 솔 향기를 오롯이 가둔 숲길이 기다린다. 휘파람새 한 마리가 맑은 울음을 남기며 날아간다. 길은 곧 해안도로로 이어진다. 알뜨르 비행장을 오른쪽 너머로 두고 걷는 길. 이 비행장 역시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제가 건설했다. 도쿄에서 뜬 군용기가 이곳에서 연료를 보급받은 후 베이징, 상하이, 난징까지 날아가도록 하기 위해. 감자밭으로 변한 비행장에는 감자 캐기가 한창이다. 훌쩍 뒤로 물러선 산방산 앞으로 유채꽃이 만발해 있다. 제주에서 유채는 계절 없이 피는 꽃이다. 유채밭 옆에서는 바람과 몸을 섞는 보리들의 요란한 수런거림. 길은 모슬포의 하모해수욕장에서 끝이 났다.

일제가 만든 비행장은 감자밭 되고 

올레길을 걷는 동안 온갖 기억의 저장고들을 경계도 없이 건너다녔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뒤섞으며 후회하고, 반성하고, 꿈꾸고, 준비한다. 걷고 있을 때 과거는 살아오고, 현재는 풍성해지고, 미래는 성큼 다가온다. 생각이 단순해지고, 삶이 담백해진다. 발바닥으로 세상을 열어가다 보면 어느새 익히고 만다. 무심해지는 법을, 내려놓는 법을.

그렇게 지치도록 걸을 수 있는 길을 품은 제주는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올레의 길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내년이면 올레길을 따라 제주도를 온전히 걸어서 돌아볼 수 있게 된다. 큰일이다. 아무래도 걸린 것 같다. ‘또갈래 증후군’을 남기는 ‘올레병’에.

 

■‘올레’란 집에서 거리까지 나가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이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지금까지 7개 코스를 개발했다. 제1코스 시흥초등학교∼섭지코지(17.6㎞), 제2코스 쇠소깍∼외돌개(14.4㎞), 제3코스 외돌개∼월평포구(15.1㎞), 제4코스 월평포구∼대평포구(17.6㎞), 제5코스 대평포구∼화순해수욕장(8.8㎞), 제6코스 화순해수욕장∼하모해수욕장(14㎞), 제7코스 성산 광치기해변∼온평리 바닷가(20㎞). 제주올레 홈페이지(www.jejuolle.org, 064-739-0815)를 방문하면 상세한 코스 정보와 함께 주변 숙소와 맛집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서귀포 월드컵경기장 내의 제주워터월드(064-739-1930) 찜질방은 수면도 취할 수 있어 올레꾼의 숙박 장소로 인기 있는 곳. 어른 9000원, 어린이 7000원. 제주한화리조트 테라피센터(064-725-9000)는 자연 친화적 소재를 이용한 유럽형 테라피 시설. 주중 4만5000원(투숙객 3만1500원), 주말 5만원(투숙객 3만5000원). 안덕면의 다금바리 전문음식점 진미식당(064-794-0033)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깨끗하고 맛있는 집’. 주인 강창건(55)씨는 다금바리 생선 하나로 33가지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다금바리 명인이다. 안덕면의 용왕난드르마을(064-738-0915)은 민박을 겸한 농촌 전통 테마마을. 보말수제비 등 향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 김남희는=‘이렇게 살 수도 이렇게 죽을 수도 없는 나이’ 서른넷에 방 빼고 적금 깨 유목하는 삶을 시작했다. 달팽이의 속도로 6년째 세계일주 중. 정착민으로 전락한 후에는 외국인을 위한 게스트 하우스, 청소년을 위한 여행학교를 운영할 꿈을 꾼다.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1~4, 『유럽의 걷고 싶은 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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