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작두에 올라탄 심정 변함 없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8호 27면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다. 변한 게 있다면 얼굴이 까무잡잡해지고 뱃살이 확 줄었다는 것. “잦은 해외 출장에 골프 라운드 횟수가 늘어 그렇다”고 했다. 2006년 3월 돌연 사표를 내고 사라졌던 조운호(46·사진) 전 웅진식품 부회장은 기대대로(?) 바쁘게 살고 있었다.

의료기기 회사로 간 조운호 전 웅진식품 부회장

그의 새 직함은 가정용 의료기기업체 ‘세라젬’의 부회장이다. 27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세라젬 서울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조 부회장은 “요즘은 샹차이(香菜)에 빠져 산다”며 첫 인사를 대신했다. 샹차이는 중국·동남아 사람들이 온갖 요리에 쓰는 채소. 특유의 역한 맛 때문에 한국인에겐 별로 인기가 없다. 그는 “이제 샹차이가 한국 채소인 것처럼 느껴진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만큼 중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나.
“의료기기 분야의 지속적인 성장 전략을 마련하는 한편 신성장 동력 사업을 찾는 일을 맡았다. 현재 활식(活食) 사업을 준비 중이다. 활식은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돕는 효소 상품이다. 선식이나 생식보다 진보한 컨셉트로 이해하면 된다. 요즘 중국에서 시범점포를 운영 중이다. 2011년에 2조7000억원 매출을 올리는 게 목표다.”

-3년 안에 매출 2조원을 넘기겠다는 것은 뜬금없이 들린다.
“매출이 70억원에 불과하던 웅진이 아침햇살·초록매실 등을 출시하면서 메이저 음료업체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처음 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세라젬의 회사 가치가 조(兆) 단위에 이르는 만큼 새 사업을 벌일 자금은 넉넉하다.”

-세라젬과의 인연은.
“창업자인 이환성 회장 쪽에서 연락이 왔다. 전에 명함만 주고받은 사이였다. 직접 만나 보니 (이환성 회장은) 야망이 있고 조직도 있고 자금력도 있는 분이었다. 동반자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엔 지난해 1월 옮긴 것으로 돼 있지만 2006년 3월 웅진에서 사표가 수리된 다음달 옮겼다.”

세라젬은 ‘온열 마사지 침대’ 하나로 지난해 3000억원 매출을 올린 가정용 의료기기 업체다. 시판가격이 200만~250만원인 고가품인데 국내외 시장에서 25만 대가량 팔렸다. 공장은 충남 천안과 중국에 있다. 한국 공장은 7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데 90% 이상이 수출이라고 한다. 중국에 1700여 개 매장을 확보한 것을 비롯해 미국·멕시코·우크라이나 등 50여 개국에 총 2500여 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조 부회장은 “조만간 증시에 상장할 계획인데 한 증권사가 가치 평가를 해보니 조단위가 나오더라”고 말했다.

조 부회장은 웅진그룹에서 37세 때 부장에서 웅직식품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되면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2005년 가을 돌연 미국으로 떠났고 이듬해 3월 사표를 냈다. 왜 갑자기 회사를 등진 것일까. 조 부회장은 “내가 너무 튀었나”라며 운을 뗐다.

“상도 많이 받고, 강연도 많이 나갔다. 대부분 상대방에서 먼저 요청해온 것이다. 나는 450억원 적자를 내던 회사를 음료업계 4위에 올려놨다. 식품업계 최강자라는 CJ도 실패했을 정도로 음료사업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잘난 체한다고 손가락질하던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조운호의 몰락’을 내심 고소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추진했던 프로젝트 가운데 전폭적으로 지원을 받아 한 것은 드물다. 오히려 반대 의견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반목하고 질투하는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반대 의견을 극복하는 게 내 일이다. 누구나 하는 일을 하는 것은 이상하게 재미 없더라(웃음).”

-오너와 불화가 있었던 게 아닌가.
“그렇지 않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16년간 모셨던 분이다. 주임 시절부터 부회장 때까지 윤 회장에게 직보했다. 2005년 말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 이듬해 초 윤 회장에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 지켜봐 달라’고 한 뒤 떠났다. 회장께선 ‘조운호답다’며 노잣돈도 줬다. 그렇게 아름답게 이별했다.”

조 부회장의 첫 직장은 은행이었다. 부산상고를 졸업한 직후 열아홉 나이에 제일은행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웅진으로 옮겼는데 당시 유일하게 그의 이직을 격려한 사람은 아내뿐이었다고 했다. 그런 만큼 그의 아내는 웅진에서 퇴사한 데 대해 상당히 서운해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의 아내는 마트에 다녀오면 ‘당신 둘째, 넷째 자식 잘 있더라’고 말하곤 한단다. 무슨 얘기인가 했더니 웅진 근무 시절 맏딸 혜원(17)과 아들 동현(11)을 낳는 사이에 히트 음료 ‘가을대추’와 ‘아침햇살’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올해로 가을대추는 13살, 아침햇살은 9살이 됐으니 그에겐 둘째, 넷째 자식인 셈이다.

-자식 같은 상품을 놔두고 이직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존경하는 어른 중에 긍표 큰스님이 있다. 2005년 말 찾아뵈었더니 ‘뭐하러 왔느냐’고 묻더라. 그래서 ‘지금까지 저 잘난 맛에 살았는데 이제 몸을 낮추는 법을 알고 싶다’고 했더니 ‘네가 뭐가 높다고 낮추느냐’고 큰소리를 치더라.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다시 ‘제 일을 해보고 싶다’고 여쭸더니 ‘애당초 네 것이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2004년에 펴낸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한다』는 책에서 ‘작두를 타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지금도 그런가.
“비즈니스를 하면서 늘 작두 위에 올라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작두 위에선) 신명 없고, 확신이 없으면 발을 벤다. 아니 더 치명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멀쩡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