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지리기행>12.경상남도 함안-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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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정구가 군수로 부임해 풍수지리설에 따라 백암동에 있던 동헌을불질러버리고 봉성동으로 옮겼다는 낭설도 그렇거니와 그가 고을 터를 잡으려고 군북에서부터 훑어 내려오다가 터에 대한 평가를 잘못한 제자를 목베어 죽이고 나서 중리로 빠지는 대밭골에서 내려다보고는 오히려 자신이 잘못 봤고 제자가 제대로 봤다며 후회했다는 설화도 기록과는 전혀 상반되는 사실이다.문제는 당시의 읍민들이 풍수에 입각,지세를 해석하는 일을 통례로 삼고 있었다는 점에 있는 것이 아닐지.
어찌됐거나 정구는 지금의 함안국민학교 뒷산인 비봉산을 봉황이날아오르는 형국(飛鳳形)으로 보아 그 읍 자리에 봉의 알 모양으로 흙을 쌓고(卵丘) 또한 읍터 동북쪽에 벽오동 1,000그루를 심어 대동수(大桐藪)라 명명한 것은 물론 대산리에는 대숲을 일궈 봉황이 영원히 이곳을 떠나지 못하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니,이는 봉황은 본래 오동나무에 깃들이는 법이고 죽순을 먹이로삼으며 그 알에 천착해 차마 그 곳을 떠나지 못하도록 했다는 항설을 잘 이용한 예라 할 것이다 .
위 사실이 과연 풍수를 빙자한 미신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반드시 그렇지는 않다.함안이 물난리를 자주 겪던 터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알모양의 둔덕은 홍수 감시와 임시대피소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이 되고 대숲과 오동숲은 방 풍과 격류를억제하는데 유리한 조형물일 것이니 함부로 풍수를 미신이라 하여던져버릴 일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구오수 할아버지는 지금의 향교자리가 함안 제일의 명당이라 주장한다.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하지만 너무 오목하고 깊숙이 자리잡은 터이기 때문에 조금은 답답하고 소극적으로 보이기도 한다.명당의 개념이란 세월따라 상황따라 바뀔 수도 있 는 것인즉 풍수적 입지조건 논리는 지나치게 교조적으로 또는 절대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하지만 50여년전 개간으로 없어진 대동수는 세월이 아무리 바뀌어도 땅을 생명으로 여기고 생명을 아끼는 풍수의 사상적 본질을 훼손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가 된다.숲은 풍수의 옷이요,옷을 벗긴 터가 좋을 수 없는 까닭이다.
(최창조前서울대교수.풍수지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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