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新인간>12.런던 SBC워버그社 이사 한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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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매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게 국제증권브로커의 가장 큰매력이지요.』런던 SBC워버그사의 아시아세일즈 담당 이사 한정화(韓晶華.35)씨.160㎝ 남짓의 아담한 체구에 치렁치렁한 생머리,그리고 상냥한 웃음으로 마치 포근한 사촌누이 를 만난 기분이 든다.그러나 그녀의 신상명세서를 들여다보면 부드러운 외모와는 전혀 딴판이다.유럽 최대의 투자은행겸 증권회사 SBC워버그의 아시아지역 증권판매책임자,그리고 이 회사의 유일한 동양계 이사이자 런던 금융시장내에서 가장 촉 망받는 아시아 출신 증권브로커라는게 그녀의 현재 프로필이다.런던의 금융시장,특히 증권브로커들의 세계는 비정하기 짝이 없다.세계적인 큰손들의 위탁을 받아 증권을 매매하고 그때그때 각국의 증권시황(市況).투자정보제공및 자문에 응하는 것 이 증권브로커의 업무다.
『한번에 몇천억원의 돈이 오가는 것이 보통이어서 자칫하면 수십억원의 고객돈을 단숨에 날릴 수도 있고 그만큼을 벌어줄 수도있는게 우리 직업』이라고 韓씨는 설명한다.
이같은 속성상 단기간내에 유.무능이 판가름날 수밖에 없다.필연적으로 조기에 도태하는 숫자도 많으며 그만큼 출세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된다.
뉴욕.도쿄와 함께 세계 3대 금융중심지라는 런던에서,그것도 한국출신 여자의 몸으로 증권브로커의 정상을 향해 질주중인 韓씨는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韓씨가 몸담고 있는 워버그사는 세계 최고를 다투는 스위스계 투자은행겸 증권회사다.과거 영국계 은행이었으나 지난 7월 스위스SBC(Swiss Bank Corporation)와 합병,회사명이 SBC워버그로 바뀌었다.
94~95년간 한해 수입은 10억400만파운드(약1조1,000억원)로 인건비등을 빼고 순이익만 2억9,000파운드(3,400여억원)를 챙겼다.
『특히 우리 회사는 최근 신흥 금융중심지로 각광받는 동남아 증권시장에 주력,각 분야에서 미국계 증권회사와 1,2위를 다투고 있다』고 韓씨는 자랑한다.
『본인이 직접 주무르는 돈의 액수는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그녀는 『회사기밀이어서 밝힐 수 없다』며 미안해했다.
그대신『지난 11월말 인도네시아 국영통신회사 PT 텔콤의 런던 주식 상장건을 우리팀에서 처리했는데 그 규모가 7억달러(약5,000억원)정도였다』고 귀띔해준다.
이같은 큰 건이 1년 통틀어 10여건 이상에 달한다니 韓씨가다루는 돈은 못잡아도 수십억달러,즉 수조원은 능히 될것이 분명했다. 한국기업들과의 거래실적도 적지않아 대한통운의 해외전환사채(2,000만달러)와 만도기계의 해외예탁증서(3,000만달러) 발행이 최근 韓씨의 작품이다.
물론 이같은 상황 아래에서 韓씨가 지휘하는 아시아팀은 회사내에서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그녀는 영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선발된 내로라하는 증권브로커 19명의 「보스」다.『1명의 여직원과다른 1명의 한국직원을 빼면 나머지 17명의 부 하직원 모두 백인 남자』라는 것이다.
***영국인 만나 93년 결혼 그렇다면 한국인으로,게다가 여자의 몸으로 장대같은 백인남자들 사이에서 이만큼 두각을 나타낼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韓씨는 『시시각각 쏟아져나오는 최신정보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던게 주효했던 것같다』고 털어놓는다.그러나 일에 대한 각별한 정열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다고 주변사람들은 입을모은다. 어느정도냐 하면 93년 지금의 영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예식도 올리지 않은채 구청에 가서 간단히 혼인신고만 했다는것.또 최근 득남한 그녀는 출산때에도 주말까지 근무한뒤 곧바로입원,제왕절개수술로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이 모두가 『일이 너무 바빠서였다』는게 韓씨의 이유아닌 이유였다.
이밖에『독특한 성장배경도 국제적 감각을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된 것같다』고 그녀는 말한다.아버지가 우리나라 외교관이었던 탓에 韓씨는 대만에서 태어나 태국.인도네시아.우간다등 무려 8개국에서 자랐다.
한마디로 성장 자체가 무척 국제적이다.한국에서 살았던 기간은열살때부터 2년간 국민학교를 다닌게 전부.영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친 그녀는 대처 전총리가 다녔던 명문 옥스퍼드대학 서머빌칼리지에 진학,그곳에서 그 유명한 「정치.철학. 경제학」과정을이수했다.
韓씨는 졸업 직후인 83년 영국의 증권회사 MLS에 입사한 이후 줄곧 위카증권사.나트웨스트은행 등에서 증권브로커.금융분석가로 일해왔다.지금의 직장인 SBC워버그에는 91년 들어와 탁월한 업무성과로 아시아지역 증권세일즈 책임자에 발 탁된 것이다. 그녀는『비록 백인들 틈에 낀 동양인이었지만 그들의 문화에 잘 적응했던 탓에 한국인이라고 별다른 불이익을 당하진 않았다』고 말했다.그러나『비록 서양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로서 겪는 애로점은 적지 않다』고 실토한다.
***새정보 입수 항상 노력 심지어 영국고객들도 여자가 아시아지역 책임자를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면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시아 책임자를 찾는다 해서 직접 전화받게 되면 여비서로 오인하는 사람이 태반』이라며 韓씨는 웃는다.
물론 한국을 비롯,동양의 기업들은 더욱 심하다.수년전 영국인고객과 함께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는 아예 상대방에서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한다.『한국의 모회사 간부는 시종일관 영국인과 이야기했다』며 『나에게 물어본 말이라곤 고작 「 런던이 쇼핑하기 좋다는데 사실이냐」는게 전부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라는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韓씨는 야무진 보스로,그리고 브로커로 매일 오전7시30분부터 오후7시까지 이어지는 격무를 거뜬히 해치우고 있다.
그는『업무 자체가 힘들다고 생각해본적은 없으나 항상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고백한다.
그럼에도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식지 않는한 韓씨의 야무진질주는 계속될 것이라는게 그녀를 만나본 느낌이었다.
한국기업들과도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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