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리기행>8.강화 보문사

중앙일보

입력 1995.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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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강화섬 내가면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석모도 석포리(돌캐)까지 그저 5분 남짓한 거리지만 뱃머리 특유의 냄새와 분위기,그리고통통거리는 선박의 발동기 소리들이 육지를 떠난다는 기분을 충분히 전달해준다.석포리에 내리면 대개 보문사 가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절 아래 마을까지는 20분 정도 걸릴까.섬의 남쪽을 돌아나가는 길가 풍경이 볼만해 지루한 줄 모르겠다.평일인데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다.승객 대부분이 보문사 가는 사람들인지 종점에 갈 때까지 내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이곳에서 불공을 드리면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자식을 낳게 된다는 우리나라 3대 해상관음기도도량(海上觀音祈禱道場)으로 알려진 탓이리라.
일주문을 지나 올라가는 길이 제법 가파르다.절 주위에서 무엇보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절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낙가산인데 이는 관음도량에 흔히 쓰이는 지명이다.이 낙가산 산룡(山龍)은 그 맥을 어디에 두고 있는 것인가.이를 알기 위해서는본섬인 강화의 산세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우리 국토의 척추인 백두대간은 한강 남쪽으론 한남정맥을 뻗쳐놓았다.이 정맥의 한가지가 광교산(582.용인군수지면)을 만든뒤 군포에서 수리산(475)을 일궈놓는데 이 산이 서해 중부의한 종산(宗山)기능을 수행한다.여기서 이 용 맥은 북서 건방(乾方)으로 머리를 돌려 소사의 소래산(299),부평의 계양산(395)을 지나 다시 머리를 북쪽으로 틀어 북성산을 이룬다.계속 이어진 이 용맥은 간연산(일명 개련산)과 약산(김포군대곶면약암리)을 지나 쇄암진(김포군대곶 면)에서 바다를 만난다는 것이 강도지명고의 설명이다.
이제 어떻게 되는가.강도지(江都誌,肅宗 35년.1696년 발간)에 의하면 「물 밑으로 뻗어 강(바다)을 건너 서쪽으로」이어진 것으로 표현했으니 적절한 말이다.이리하여 도달한 곳이 불은면 덕성리의 대모산(84.2)이라 했으니 이곳이 바로 강화 산룡의 엄뫼(母山)가 되는 셈이다.즉 백두의 정기는 바로 소용돌이치는 손돌목을 건너 강화로 연결됐다는 얘기다.이곳은 바닷속에 바위가 많이 숨어있고 물살이 급히 소용돌이쳐 뱃길이 아주 위험한 곳이다.이렇듯 산천의 조화는 거짓이 없다.백두간룡의 한지맥이 바다를 건너기 위해선 손돌목 정도의 조화는 있어야 하는것이다. 이 모룡은 강화 전역에 마리산.진강산.혈구산(일명 穴窟山).고려산.별립산 등의 강도6대산(江都六大山)이란 자식을 낳았는데,그중 마리산 가지가 다시 바다를 건너 이룬 것이 바로보문사가 의지하고 있는 낙가산,즉 해명산인 것이다.이 해명산이바로 강도6대산의 나머지 하나다.모두 12봉우리인 해명산 중 그 두번째 봉우리 서쪽 골짜기에 바로 보문사가 자리잡고 있으며그 봉우리에 마애불상이 새겨져 있는 눈썹바위(眉岩)도 있다.
즉 백두산의 큰 정기가 수천리를 용틀임치며 달려 내려와 바다를 두번씩이나 건너 끝으로 이루어 놓은 곳이 낙가산이니 이른바절맥(節脈)이 아닐 수 없다.풍수는 땅을 사람대하듯 하는 지리학이니 이곳은 용의 사정처(射精處)에 해당된다고 볼수 있다.말하자면 정기극진취주처(精氣極盡聚注處)인 것이다.왜냐하면 한반도를 서쪽을 바라보며 서있는 남자의 모습이라 할 때 김포반도와 강화도는 발기한 남성의 성기에 해당되고 석모도는 거기에서 사출된 정액과 같기 때문이다.이런 곳에 서 일반인들이 자식 낳아달라고 비는 습속이 생긴 것은 이 땅의 이치로 보아 이상한 일이아니다.정액을 쏟고 있는 용 앞에서 그 은덕으로 소생을 보자는것은 불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민속으로는 적절한 입지선정이라 아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땅에는 지나친 인공의 건축물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풍수의 정도인지라 지금의 범종각-관음전 요사채를 연결하는 선 상부는 결코 더 이상의 지모훼손을 자제해야 할 것이거니와 그 선하부라 할지라도 일주문 위쪽으로는 가급적 손을 대지 않는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공간 배치는 적절하다는 판단이 든다.관음전과 석실은 계좌정향(癸坐丁向.磁北基準 205도.西南西)인데 석실이오향(午向.남향)에 조금 더 가까운 편이다.그리고 그 바로 뒤에 눈썹바위의 관음상이 마애돼 몽웡躁■■관음상 올라가는 초입에 세워진 공덕비도 너무 과중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규모가 지금보다 작거나 아니면 아예 관음전아래쪽으로 옮기는 것이 관음전-석 실-관음상의 지기상통(地氣相通)을 방해하지 않는 길이 될는지도 모른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관음전 뜰에서 보아 간향(艮向.北東쪽)으로 능선 바로 위에 흰색으로 빛나는 둥그런 바위가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이는 언뜻 규봉(窺峯)을 연상할 수도 있으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앉으나 서나 보이는 것은 물론이 고 정향에서간향에 드러나는 엿보는 물체는 규봉일 수 없기 때문이다.이는 오히려 상당한 상서로움의 징조로 보이는데 그것이 특히 떠오르는보름달 모양이란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본래 보문사 터가 민속풍수상 기자(祈子)의 상징성을 갖는 땅인지라 만월은 임신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런 둥근 바위가 간방에보이는 것은 분명 상서일 것이라는 짐작에서다.따라서 이 역시 관음전 뜰에서 그 바위를 가리는 어떠한 구조물도 있어선 안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석실 앞의 향나무와 그 앞 느티나무는 한번 쳐다보는 것만으로 심소담쇄(心簫膽灑)케 한다.피곤이 모두 가신다.여러 사람들 속에 섞여 499계단을 올라 마주 대하는 석모도 앞바다의 장관과관음상의 장중미려는 나같은 얼치기 공부쟁이가 표현 할 말이 없다.그저 한마디 『아』소리뿐이다.
잠시 땀을 들이고 나니 무심을 지나 허심의 상태가 된다.망망하나 결코 처연하지는 않은 바닷물에 반사되는 햇살,올망졸망한 섬들,뒤에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관음보살님.석실에서 느꼈던 소쇄를 다시 느낄 수 있다.홍진에 썩은 명리야 아는 체나 하리요. 다시 절을 내려와 버스를 탄다.사람이 많다.서있기도 답답할 정도로 복잡하다.여기서 다시 배를 타고 차를 타고 하며서울로 돌아가야 한다.그 잡답의 홍진 속으로 말이다.그러나 나는 갈 데 없는 속인인가 보다.
그 도정이 울적으로 이 어지는 것이 아니라 체념으로 들어가기때문이다.
글=최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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