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첫 기숙형 공립학원 순창‘옥천인재숙’의 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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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6월 순창군은 지방자치단체로선 전국 최초로 기숙형 공립학원을 세웠다. 이른바 ‘옥천인재숙’이다. 순창군은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형편임에도 20억원을 투자했다. 순창군이 거금을 들인 이유는 관내의 교육 여건이 안 좋아 우수 학생들이 인근 광주·전주로 빠져나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옥천인재숙은 진학 성적 면에선 뚜렷한 성과를 냈다. 2007학년도엔 15년 만에 두 명의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다. 올해에도 세 명이 서울대에 진학했다. 옥천인재숙을 벤치마킹해 2007년 말 현재 10개 공립학원이 전국 농어촌 지역에 세워졌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가 옥천인재숙의 선발·운영 방식에 제동을 걸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인권위는 29일 전교조 전북지부가 제기한 진정에 대해 “공교육의 취지에 맞게 기숙학원 선발 방식, 운영 주체, 학사 운영 등을 개선할 것”을 순창군수에게 권고했다. 앞서 2006년 전교조 전북지부는 “순창군이 세금으로 기숙형 공립학원을 운영하면서 학원생을 국어·수학·영어 시험 성적순으로 선발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며 인권위에 진정했다.

◇특정 학생만 혜택 보는 건 차별=인권위는 결정문에서 “공공기관의 예산은 공교육의 이념을 실현하는 범위 내에서 집행돼야 한다”고 했다. 옥천인재숙이 군민 전체의 세금으로 운영됨에도 성적으로 선발된 일부 학생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담당자인 문은현 인권위 사무관은 “옥천인재숙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은 열등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며 “원생과 비원생 간의 학력 격차가 벌어져 비원생의 기회가 영구히 박탈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명문대 진학생을 늘리겠다’는 순창군의 학원 운영 취지에 대해서도 “인재가 명문대 입학을 통해서만 양성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문제 삼았다.

옥천인재숙은 매년 중3에서 고3까지 각 학년 50명씩 200명을 선발한다. 관내 중3~고3 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10월 한 차례 국어·수학·영어 시험을 치러 성적순으로 뽑는다.

학원생으로 선발된 학생은 방과 후 국어·수학·영어·사회탐구·과학탐구 과목의 보충학습과 자율학습을 오후 11시35분까지 한다.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광주·전주 등지의 학원에서 14명의 강사진을 초빙했다. 원생들은 학비가 전액 면제이고, 매끼 2000원의 식비만을 낸다. 집이 먼 학생은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 순창군은 기숙학원 운영을 위해 매년 1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지역 현실도 고려해야=인권위의 결정에 대해 강인형 순창군수는 “국비 유학생도 정부 세금으로 보내는데 실력으로 뽑지 않고 희망자 중 추첨으로 뽑아야 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강 군수는 “대다수 농어촌 학교가 수준별 선별학습을 하고 있는데 인권위 주장대로라면 이 모두가 평등권 침해”라고 반박했다.

순창군 관계자는 “인권위 판단은 지역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엔 돈 있는 집 자녀들은 교육을 위해 도시로 나갔고 없는 집은 자포자기했다. 지금은 학생들 사이에서 열심히 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교사들도 더 긴장해서 가르친다”고 지적했다.

신장호 순창고 교장은 “전교생이 403명인 우리 학교는 희망자를 받아 방과 후 자체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시키고 있는데 여건상 180명밖에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 교장은 “현재 우리 학교 학생 100여 명이 옥천인재숙에 있는데 이곳이 없었다면 180명 중 100명은 보충수업 혜택을 못 받고 방치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공교육이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부분을 옥천인재숙이 메워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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