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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강1만리>11.남방 詩歌의 뿌리굴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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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굴원의 고향에 오셨음을 환영합니다(歡迎來屈原故里遊)」.
중경(重慶)에서 장강을 따라 밤낮 사흘을 내려와 나룻가 건물흰 벽에 붉은색으로 쓰인 글귀를 만났다.중국 남방 시가문학의 비조인 굴원(屈原)의 출생지 자귀(歸)는 장강 삼협(三峽)중 하나인 서릉협(西陵峽)의 동쪽 끝 호북성(湖北省 )의 한 현단위 마을이다.
가파른 경사지대를 깎아 터를 잡고 굴자사(屈子祠).굴원기념관.굴원묘를 계단식으로 세워놓았다.굴원이 이곳에서 태어났으니까 사당이나 기념관을 설치한 것은 이해가나 그의 잃어버린 무덤까지이곳에 세운 것은 아마 중국적 발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굴원이 투신한 곳은 호남성 멱라강이다.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지만 고향사람들은 이곳 묘 안에 붉은색 옻칠을 한 빈 관을 매달아놓고 관람객을 유혹하고 있다.
굴원(기원전340~278)은 초나라의 정치가요 대시인이며 『초사(楚辭)』라는 중국 서사시 장르를 만들어냈다.그는 나라가 망하자 이를 비통히 여겨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버린 애국시인으로 오늘날까지 칭송받는다.
이백(李白)과 함께 굴원은 중국은 물론 한국문학사에 엄청난 족적을 남겼다.자귀와 멱라를 탐사하면서 우리는 새삼 굴원의 흔적이 민중들의 삶 속에 녹아있음을 확인했다.『시경』이 중국 고대 북방 시가문학의 집대성이라면 『초사』는 남방 시가문학의 연원이라 할 수 있다.『시경』이 궁중아악이나 종묘제례에서 쓰이는노래의 가사와 각 지역 민가속요를 관리가 채록한 것을 모아놓은것임에 비해 『초사』는 당시의 이름난 시인들의 작품집이다.그런점에서 『초사』는 정통문인들의 혼과 기가 배어있다고 하겠다.그가 멱라강에 몸을 던진 애국충절을 기려 음력 5월5일 단오절이되면 장강 유역 사람들은 강물에 배를 띄워 물고기들에 먹이를 주며 용선(龍船)경주를 벌인다.이는 굴원의 시신을 찾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의 단오절 풍습도 이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자귀는 또 한(漢)나라 때 비운의 여인 왕소군(王昭君)의 고향이기도 하다.극장으로 꾸며진 바지선에서는 100위안(약 1만원)의 입장료를 받고 외래 관광객을 상대로 나룻가 강에서 어부들이 배를 저으며 굴원의 넋을 위로한다는 초혼곡과 왕소군이 고향을 떠난다는 『소군별향(昭君別鄕)』을 공연한다.또 용선경주를 하는 선착장에는 왕소군으로 분장한 여인이 시녀와 가마를 대령하고 기념촬영에도 응해준다.촬영비는 중국돈 10위안이다.
현대화(?)한 굴원의 고향보다 그가 투신한 멱라강이 더욱 그의 체취를 담고 있을 것으로 느껴 취재팀은 멱라강을 찾았다.악양(岳陽)에서 버스로 2시간 남쪽으로 달리면 멱라강에 이른다.
이곳에도 굴자사.굴원묘.소단(騷壇).독성정(獨醒亭 ).탁영교(濯纓橋)등 굴원의 삶과 시가에 관련한 유적이 보존되고 있다.
현지주민의 말에 따르면 굴원이 강물에 몸을 던진 곳은 멱라강굴자사로부터 하류쪽으로 5㎞ 떨어진 「하백담」이라고 한다.기념사당을 그곳에 세워야 하지만 강물이 자 주 범람하므로 지금의 위치에 세웠다고 한다.
탐사중 우리는 악양시 텔레비전방송국 취재팀을 만났다.그들은 마침 중국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애국주의 교육기지 100곳 선정작업을 위해 악양시가 추천한 굴원과 범중엄(范仲淹)의 보도자료를 제작중이라고 했다.굴원의 애국주의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고 범중엄의 경우『악양루기(岳陽樓記)』에 나오는「천하의 근심을 내가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나는 나중에 즐긴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구절이 청소년들에게 좋은 교육이념이 된다는 것이다.
악양TV팀은 우리가 한국에서 굴원을 취재하기 위해 멱라까지 왔다는 말을 듣고 자못 놀라워하는 눈치였다.그리고 『한국사람도굴원을 아느냐』고 물었다.한국의 대학 중문과에서 『시경』과 함께 『초사』를 가르치고 있고 또 옛 선비들이 굴 원에 관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대답하자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즉석에서 고려때 한 승려가 남긴 굴원을 소재로 한 시를 소개하자 그들은 열심히 받아썼다.
『전신은 바로 초나라 대부 굴평이었으리니/물고기 뱃속의 충혼이 변해서 이루어진 것/쇠락한 시정의 풍속이지만 그래도 존경할줄 알아서/굴이라고 성만 부르지 굴평이라고 이름까지 부르지는 않는다네(前身自是大夫平 魚腹忠魂變化成 衰俗亦知尊 敬義 只稱其姓不稱名)』.
중국 역사상 우 임금의 치수이래 최대의 공사인 삼협댐이 건설되는 삼두평에서 굴원의 고향 자귀는 멀지 않다.댐이 완공되면 삼두평 전체가 수몰된다.자귀현은 머지않아 댐 근처의 봉황성으로이전한다고 한다.굴자사.굴원묘.굴원기념관도 자귀 와 함께 옮겨가게 될 것이다.2,000여년전 국운의 쇠망을 개탄하면서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진 굴원의 빈 무덤이 이제는 국력의 번창으로강물을 피해 옮겨가게 되었다.운명의 여신은 참으로 해괴한 장난을 즐긴다는 생각이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 다음회는 「중국연극의 귀족 崑劇」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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