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며생각하며>48.仙道체험소설 작가 김태영씨

중앙일보

입력 1995.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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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선도(仙道)나 단전 호흡 얘기는 자주 듣는다.신라 사람 최치원(崔致遠)이 쓴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을 보면 이 도가 곧 화랑도(花郎道)였음도 알겠고,신라만이 아니라 단군 때부터 내려오는 온 겨레의 현세적(現世的)수련과 교화를 위한 도였음도 알겠다.그러나 그 내용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 것도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없다(언젠가는 나도 선인(仙人)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나 자신의 막연하지만 가장 소중한 소원이라는 건 틀림 없다).
김태영(金泰永.64.경기도개풍군 태 생)씨는 이 길에 달통한 도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내가 못 알아 들을 어려운 말이 대화 가운데 나오면 그때마다 설명을 구해 알아 듣도록하리라,이렇게 작정하고 서울 선릉부근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 갔다.조그마한 집이다.
나는 이 사람이 소설가이고 오랫동안 신문기자로 지냈다는 점만은 미리 알고 있었다.한 사람의 지나온 세월을 그 자신의 육성으로 먼저 들어 두면 장차 그가 하는 다른 말을 알아듣기 쉽다.곡절 많은 지난날을 그는 담담한 말로 짧게 들려 준다.
『저는 경기도 개풍에서 났는데 두살때 가족이 서울로 이사했다고 했어요.제가 아홉 살 되던 해 우리 집은 서울을 떠나 함경도 청진으로 다시 이사를 갔습니다.아버지는 임업도 하고 다른 장사일도 했습니다.저는 청진에서 국민학교.중학교를 마쳤습니다.
6.25가 나던 해,19세 나이로 인민군에 징집돼 입대했어요.계속 전투하며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50년 9월9일,경남 함안에서 포로로 잡혔습니다.거제도를 거쳐 부산 가야리 포로수용소로이송되었습니다.포로수용소 안에서는 포로들끼리 좌 .우익으로 대립해 격렬한 마찰을 일으키고 있었지요.
저는 우익 수용소에 있었지만 포로교환 소식을 듣고는 처음엔 다시 북으로 갈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이데올로기 보다 육친이그리워 견딜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같이 포로생활하던 어떤 분(당시 인민군 장교,지금 남한에 살고 있음)이 「북에 가면 넌 죽는다,절대로 가지 말라」고 단호하게 충고하는 것이었어요.이승만 대통령이 반공포로를 일방적으로석방하던 날,저도 포로수용소를 뛰쳐나왔습니다.1 953년 6월이었지요.
수용소에서는 나왔지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남쪽 땅에서 생활근거를 마련할 도리가 없었어요.생각 끝에 이번에는 국군에 자원입대했습니다.
군대생활을 마친 후에도 갈 데가 없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 논산에서 신병훈련을 끝내면서 간부후보생에 지원했습니다.1954년 여름 포병 소위에 임관되었어요.그러나 10년간의 한국군 장교생활은 만년 중위로 천대받으며 허구한 날 피교육자로 뽑혀 이리 저리 쫓겨다니기나 했을 뿐 실패로 끝났습니다.
예편한 다음 마침 이북에서 인민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대학교수로 계셨는데 그분의 도움을 받아 경희대학교 영문과 2학년 학생으로 편입학했습니다.33세 때였습니다.대학을 졸업하고 36세 때인 67년에 코리아 헤럴드 기자로 취직이 되었습 니다.그 후코리아 타임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그러나 88년에 만 55세로정년퇴직할 때까지 저는 제대로 신문기자다운 기자생활 한번 못해보고 줄곧 「시사영어 해설판」만 담당했습니다.직위도 남들처럼 국장이나 논설위원은 바라볼 수도 없 었고 겨우 차장으로 끝이었지요.그러니 저는 언론계 생활에서도 실패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불만스러운 직장 생활이 계기가 되어 자신을 다른 방면으로 실현시켜 보려고 어릴 때부터 꿈꾸던 소설 쓰기를열심히 했습니다.여러번 응모했습니다만 번번이 떨어지더니 74년에 김동리 선생이 「한국문학」지에 제 작품을 당 선시켜 주었습니다.』 김태영씨는 1990년부터 시작해 「선도 체험기,신선이되는 길이 보인다」라는 제목의 일기체 자전(自傳)소설 시리즈를집필해 발간하고 있다.올 9월에 제30권이 나왔다.제30권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지금)만약 육군 중위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좌절.울분.불평불만 따위에 시달리는 대신에 지혜로운 양치기처럼 차분하게 대처할 것이다.또 만약에 신문기자 생활로 되돌아 간다면남보다 10년 늦은 나이에 기자가 된 것을 신세 한탄하거나,지금 생각하면 가당치도 않은 불평불만으로 앙앙불락(怏怏不樂)하던소외계층이나 국외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은 그가 이미 「선인」의 경지에 들어섰음이 드러나는 한 조그마한 단면인지도 모른다.이 책은 소설이라기 보다 그가 선도에 입문한 다음 마음과 몸으로 겪은 사실상의 체험기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80년대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 선도 붐이 일어났다.그 당시김태영씨는 마음 뿐만 아니라 몸도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져 있었다고 한다.심한 불면증.소화불량.신경통을 앓고 있었다.그가 선도에 관한 책을 10권쯤 구해 읽고는 독학으로 본 격적 단전호흡수련에 들어간 것은 86년 1월이었다.우리나라에는 선도에 몇가지 다른 유파가 있다고 한다.독학으로만 넘어가기에 어려운 벽에부닥치자 그는 기존 선도 고수의 지도를 받기도 했다.
김태영씨는 자기가 터득해낸 선도의 요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도는 환인.환웅.단군 이 삼황천제(三皇天帝)의 가르침입니다.이 가르침은 천부경(天符經).삼일신고(三一神誥).참전계경(參佺戒經),이 세 경전에 있습니다.이 가르침의 이상(理想)은한 마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이화세계(理化世界) 에 있습니다. 선도는 세 가지 공부입니다.마음공부.기(氣)공부.몸공부,즉심.기.신(心.氣.身)공부가 그것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기도나 참선은 마음 공부입니다.그런데 마음공부만 하고 기공부.몸공부를 안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몸이 병에 걸립니다.죽을 때는 병으로 죽습니다.
삼일신고에는 마음공부의 목표는 지감(止感),기공부는 조식(調息),몸공부는 금촉(禁觸)에 두고 있습니다.』 김태영씨는 단정히 몸에 힘을 뺀 자세로 앉아 말을 계속한다.그의 목소리는 젊다.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가 나오면 종이 쪽지에 한자까지 써서 설명해 달라고 군데군데에서 그에게 요청했다.
『남을 위하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하는 것이다,그러므로 남을 먼저 생각하라(易地思之),그러나 잘못된 것은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려라,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척 맡겨라(放下着),거짓나(假我)를 내보내면 참나(眞我)가 들어온다,이것을 깨 닫고 실천하는 것이 마음 공부입니다.
기공부는 단전(丹田)호흡입니다.이 방에는 매일 오후2시부터 단전호흡하는 사람들이 찾아듭니다.단전호흡 공부는 열 단계의 수련을 거쳐야 완성됩니다.여기서는 말로 무엇을 가르치거나 하는 일은 없고 그저 반가부좌를 틀고 단정히 앉아 각기 단전으로 숨을 쉬는 것을 하루 한 두시간 계속할 뿐입니다.
다만 빙의(憑依)가 든 사람에게는 수련의 수준이 높은 사람이기를 통해 줌으로써 거들어줍니다.』 김태영씨의 말에 의하면 이열단계 수련을 거치는 동안 어김없이 수련자는 여러 번에 걸쳐 난관에 봉착한다는 것이다.이 난관은 심령학적 용어로 「빙의」라고 부르는 영(靈)의 작용 때문에 생긴다는 설명이다.
이 아주 흥미있고 으스스하기 만점인 대목에서 의혹스러워 하는내 심정을 알아차렸는지 그는 내가 알아듣게 정성스레 설명한다.
『빙의란 전생에 내가 원한 살 일을 했으면 그걸 당한 영이 빚을 받으려고 찾아와 내 기를 빼앗아가는 현상을 말하는 것입니다.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因果應報)지요.빙의령(靈)은 좋은곳으로 천도(薦度)되기를 원하는 영이기도 합니다 .기(氣)와 영계(靈界)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빙의는 단전호흡 수련 단계에서만 생기는 현상이 아닙니다.제 판단에는 모든 질병의 90%는 빙의 때문에 발병합니다.이것을 보통 심인성(心因性) 또는 신경성(神經性)이라고 부릅니다만 틀린 이야기입니다.단전호흡 수준이 높아지면 본인도 자기에게 붙은빙의령을 볼 수 있게 됩니다.수준이 높은 사람은 이 영을 보다쉽사리 천도시켜 줄 수가 있습니다.그래서 낮은 사람에게 붙은 영을 기를 통해 일단 자기 몸에 받아 그 다음에 천도해 주지요.』 몸공부에 관해 김태영씨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몸공부는 1주일에 한번 여섯 시간 동안 등산하고,하루에 한시간 구보하고,날마다 30분씩 도인체조를 하고,음식은 오행생식(五行生食)을 하는 것입니다.몸공부를 제대로 해 건강한 몸을 유지해야 단전호흡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몸공 부는 식(食).색(色).수면(睡眠),이 삼욕(三欲)을 끊는 것을 뜻하는 금촉(禁觸)을 위한 공부지요.』 선도의 몸공부 과목 속에 등산이들어있다는 것은 필경 마음공부에도 좋을 아름다운 산이 많이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선도야말로 가장 안성맞춤 수련 종목이라는 결론을 가까이 끌어다 준다.선(仙)이라는 뜻글자는 사람이 산과함께 있는 것 이다.오행생식이란 것은 각자의 타고난 몸의 오행에 맞는 날곡식을 선택해 익히지 않고 하루 세끼 그것만 한 숟가락씩 먹는 것이라고 한다.김태영씨는 자기가 이끌고 있는 유파의 선도를 「삼공선도(三功仙道)」라고 명명해 놓고 있다.심.기. 신 세가지를 공부한다는 뜻이다.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그가 한 다음 말을 생각해 내고 있다.
『수도자들은 개인적으로 도를 완성한 다음 따르는 무리를 거느리는 단계가 되면 갑자기 사이비종교로 타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치부(致富),엽색(獵色),자기우상화(自己偶像化),이탈자(離脫者)에 대한 테러등 새로운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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