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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선물하고픈 ‘사랑 동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1호 13면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
5월 25일까지 대학로 더굿씨어터
평일 오후 8시, 토·일 오후 3시·7시, 공휴일·수 오후 3시(월 쉼) 문의 02-742-9005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들딸이다. 밥알을 씹어 입에 흘려주시고, 젖은 자리를 갈아 뉘어주시던 어머니·아버지의 소중한 사랑이다. 애먼 일로 기가 죽어 집으로 돌아온 날이면 “내 새끼한테 뉘 그러더냐”고 편들어주시는 ‘까막눈’의 자식이다.

연극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노라면 절로 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값비싼 차에 흠집 나도록 몰랐느냐”고 핏대 세우는 젊은이에게 늙은 주차관리인이 고개를 조아린다. 그 할아버지도 누군가의 아비인데, 그의 인생이 저렇게 타박당해도 되는 걸까. 늙고 지친 거리의 군중이 인간의 얼굴들로 무대에 확대된다.

괴팍한 우유배달 할아버지 김만석(76)은 폐지를 주워 근근이 살아가는 송씨(77) 할머니에게 연정을 느낀다. 주차관리인 장군봉(79)은 치매에 걸린 아내 조순이(75)를 뒷바라지하며 정겨웠던 옛날을 이야기한다. 연극은 이렇듯 노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방점은 노인이 아니라 사랑에 찍혀야 한다.

사랑을 하는 이상 삶은 청춘이다. 그래서 무대 위 노인들은 때로 귀엽고, 때로 서툴고, 자주 안쓰럽다. 어릴 적 동화 속 ‘그리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가 불가능한 꿈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시간, 그들은 자꾸 돌아보고 그리워한다. “남은 시간이 없다”는 말은 비단 그들에게만 해당되진 않을 것이다.

무대는 크게 안과 밖으로 나뉜다. 양쪽의 주차장(혹은 동사무소)과 우유대리점은 바깥에서 살아가는 삶을 보여준다. 밥벌이에 필요한 노동을 하고, 뭇 사람과 투닥거리는 사회적 인간의 모습이다. 무대 가운데의 두 방은 각각 송씨와 장군봉 부부의 공간이다.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구질구질한 슬픔과 기쁨이 차오르는 곳이다. 장면이 전환되면 이 방들은 벽돌 무늬 가리개로 은폐돼 을씨년스러운 골목길 풍경으로 변한다. 이로써 우리는 알게 된다. 무심히 스쳐가는 길가 콘크리트 벽 안쪽에 남모르는 희로애락이 춤을 추고 있음을.

‘늙은 부부 이야기’ 등 올해만 세 번째 실버연극에 참여한 위성신씨가 연출을 맡았고, 뮤지컬 ‘달고나’ ‘겨울연가’의 오은희씨가 각색했다.
원작은 인기 만화가 강풀(강도영)의 인터넷 만화다. ‘순정만화’ ‘바보’에 이어 이른바 ‘순정만화 시리즈’ 시즌3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3000만 페이지뷰를 기록하며 많은 네티즌을 울렸다. 지난해 말 단행본(문학세계사)으로 나온 데 이어 드라마·영화·뮤지컬로도 제작될 예정이다.

인터넷 만화가 어떻게 무대로 옮겨졌나 궁금해 찾은 관객도 많지만 객석의 절반은 중·노년층이다. 자녀가 모시고 온 경우도 있고, 부부가 나들이하기도 했다.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해졌는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극장을 나서면서 “연극 보는 게 몇 년 만인지 몰라” “실제로 사람들이 나와서 하니까 TV보다 실감 난다”며 소박한 감상을 털어놓는다. 어쩌면 그것이 연극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일지 모른다. 우리가 서로 대화를 했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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