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BOOK책갈피] 진정한 행복 얻기 원한다면 ‘만들어진 자아’부터 벗어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내가 에리히 프롬에게 배운 것들
라이너 풍크 지음
김희상 옮김
갤리온
258쪽, 1만2000원

1972년 어느 가을날, 스물아홉 청년이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의 방문을 두드렸다. 그 청년의 이름은 라이너 풍크. 윤리학 박사논문을 쓰고 있던 그는 당시 72세였던 프롬에게 일대 도전을 할 참이었다. 유대인 학살이라는 참혹한 역사를 공부한 풍크는 신에 대한 믿음 없이는 인간의 윤리란 존재할 수 없다고 굳게 믿었다. 유대계 독일인인 프롬이 무신론자인데다가 인간이 인간다움만으로 윤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느꼈던 것. 하지만 프롬과 “영혼을 두드리는” 대화를 하고 난 후, 그는 인생의 항로를 180도 바꿔 그의 수제자가 된다.

이후 풍크는 프롬이 8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고, ‘에리히 프롬 전문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프롬의 학문을 집대성하여 내놓은 저작이 이 책이다. 프롬의 명저 『사랑의 기술』 『자유로부터의 도피』 등에 매혹된 적이 있다면 놓칠 수 없는 책이다.

풍크가 프롬에게서 배운 것은? 인간의 잠재의식 속에 진정한 전인격이 숨어 있고, 이를 자각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의 길에 다다를 수 있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 관계에서, 또 성장기의 경험 등으로 인해 진정한 자아가 아닌 만들어진 자아를 내보이며 살아가고 있다는 정신분석학적 통찰이다. 저자가 첫머리에서 “내가 아는 나는 정말 나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는 계속해서 한 인간의 성격이 어떠한 “관계 맺음”의 결과로 생겨난 것인지, 그 결과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자아를 어떻게 찾아 행복해질 것인지에 대해 설명해간다. 프롬의 개인적 일화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심한 아버지와 어린 시절, 12살 연상의 첫째 부인과의 실패한 결혼, 병에 걸려 무기력한 죽음을 맞이한 둘째 부인과의 관계 등등.

프롬의 정신분석학적 틀로 현대사회를 해석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개인마저 상품화된 나머지 명품으로 자신을 거짓 치장하고, 진정한 관계를 맺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쿨한 척”하는 현대인에게 일침을 가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저자는 불친절할 정도로 솔직하다. ‘구체적인 안내’를 원하는 건 상품설명서에 길들인 현대인의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명상과 자기반성 등, 스스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책을 덮고 드는 생각, 역시 행복이란 쉽고도 어렵다.

전수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