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객석] "체호프 작품엔 유머 가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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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미학적인 쇼크'여야 한다." 지난 18일 러시아 5대 연출가에 꼽히는 그리고리 지차트코프스키를 만났다. 그는 다음달에 공연될 안톤 체호프의 연극'갈매기'(4월 14일~5월 2일 예술의전당)의 연출을 맡았다.

"지루하다""어렵다"는 얘기를 주로 듣는 체호프 작품이지만 그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대사와 상황 속에 녹아있는 유머를 기존 연출가들이 제대로 집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체호프가 얼마나 유머러스한 극작가였는지를 보여 주겠다"고 선언했다. 올해로 서거 100주년을 맞은 체호프의 작품이 러시아 연출가와 국내 배우들에 의해 되살아난다.

-'갈매기'는 어떤 작품인가.

"러시아의 대표적인 극장인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무대 막에는 날아가는 갈매기가 그려져 있다. 체호프의 작품에서 따온 그림이다.'갈매기'는 잔잔한 일상사를 통해 진실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연극이다."

-100년도 넘은 옛날 작품인데.

"고전은 언제나 동시대성을 띤다.나의 부모님, 부모님의 부모님이 보고 느꼈던 감동을 새롭게 보여주고 싶다. 시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것이 고전의 힘이다."

-유명한 작품인데도 '갈매기' 연출은 처음이다.

"오랫동안 일부러 체호프를 외면했다. 러시아의 학교에선 체호프의 연극이라면 무조건 단체 관람을 갔다. 작품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 어느 순간부터 '체호프'란 말만 들어도 지겨웠다. 그런데 5년 전에 그의 희곡을 다시 읽었다. 눈물이 나더라. 그의 작품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지 깨달았다. 그 뒤엔 사냥꾼이 목표물이 눈앞에 다가오기를 기다리듯이 체호프의 작품을 기다렸다."

-체호프 작품의 매력은.

"체호프는 의사였다. 누구보다 인간의 약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삶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약점은 모두 코미디이고, 희극적이다. 체호프는 죽을 때조차 "내 장례식에선 샴페인을 마셔 달라"고 유언했을 정도다. 이번 '갈매기'공연을 보고서 한국 관객들이 웃는다면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캐스팅이 독특한 방식이었다는데.

"대본을 주고 연기하라는 식은 없었다. 대신 인터뷰만 했다. 가령 여배우에게 '남자역을 해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이 아닌 반응을 지켜보는 식이다. 연출가는 배우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뭔가를 끄집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연출 스타일도 특이하다.

"배우는 사소한 동작 하나에 대한 당위성까지 꿰고 있어야 한다. 실제 느끼지도 못하는데 연기하는 것은 연출가로서 견디기 힘들다. 끊임없이 배우들과 토론하고 작품을 놓고 연구한다. 기대하는 대답이 안나오면 집요하리 만큼 배우를 물고 늘어진다. 스스로 알 때까지 답을 알려주진 않는다."

-러시아에선 연극이 어떤 존재인가.

"러시아 관객들은 연극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받아 들인다. 연극을 보고 떠드는 과정 자체가 생활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02-580-1300.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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