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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정부 개입의 유혹을 떨쳐버려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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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관(官) 주도의 후진적 경제정책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정부가 다급한 나머지 내놓은 갖가지 경제대책들이 영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오히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리고 있다. 정부가 집중 관리를 하겠다던 52개 생활필수품목의 값은 한 달 새 7% 가까이 올라 4월의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4.1%·전년 동기 대비)을 훨씬 웃돌았다. 공연히 되지도 않을 가격관리 정책을 내놨다가 망신만 당하는 모습이다.

고유가 시대를 이겨내겠다며 내놓은 에너지 절약대책 가운데 일부는 일주일 만에 철회했다. 일반주택과 아파트 등 가정에도 냉난방 제한온도를 적용하고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방안이다. 가정의 냉난방 온도 단속이 전혀 실효성 없는 탁상행정의 발로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온도제한은)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가이드라인이었을 뿐”이라며 “가정에는 과태료 등 강제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물러섰다.

이 와중에 공정거래위원회는 화장품·맥주 등 국내 소비자가격이 국제가격보다 높은 6개 품목에 대해 국내외 가격 차를 조사해 발표하겠다고 나섰다. 국내에서 팔리는 값이 해외보다 높다는 사실을 부각시킴으로써 가격인하를 압박하겠다는 의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과연 물가대책에까지 끼어들어야 하는지도 의문이거니와 설사 물가안정에 기여하겠다는 충정을 감안한다 해도 시장과 소비자를 철저히 무시하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소비자들은 공정위가 일일이 알려주지 않아도 어떤 품목이 해외보다 값이 비싼지 이미 잘 알고 있으며, 일상의 소비행위에 그런 판단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공정위가 품목별로 값이 얼마나 비싸다고 일러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정부는 출범 이후 시장 친화적 정책을 펴겠다고 여러 차례 다짐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시장을 믿지 못하고 직접 시장에 개입하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니 딱한 노릇이다. 말로만 정부 주도의 정책을 하지 않겠다고 할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