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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공부하지 마세요, 그냥 즐기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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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몰랐을 때 범했던 실수들

한때 난 와인은 맛이 없고 그냥 폼만 잡는 술이라 생각했다. 와인이 가지고 있는 우아함과 고상함 그리고 심지어는 낭만적일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생일날엔 꼭 맥주나 진토닉과 같은 칵테일 대신 와인을 선택했다. 주로 내가 샀던 와인이라고 하는 것이 슈퍼마켓에서 구매하는 정도였다. 이른바 오스카 샴페인 내지는 진로 포도주… 이런 것들이었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그럴싸한 와인을 찾는 다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와인 마셔본 적 있나요? 뭘 좋아하세요”라고 주변에서 물으면 난 주저 없이 먹어본 와인을 이야기 해 왔는데 그것이 오스카 샴페인 정도라고 나 할까. 아직도 이 술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실 이 술은 와인도 아니요 당연히 샴페인도 아니다. 복숭아 맛이 나는 가스 주입식 과실주라 할 수 있는데 지금 생각해도 맛이 별로 없었다는 기억이다. 그 옛날 맛보았던 이른바 '와인' 내지는 '샴페인'이라 불렀던 술은 정말로 맛이 없었다. 나중에야 그 와인들이 순수 의미의 와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와인을 몰랐을 때 범했던 대표적인 실수들…지금 생각하니 쑥스럽네…

1. 와인을 거실 장에 나란히 세워서 보관 → 와인은 눕혀서 코르크 마개가 젖어 있도록 해야 와인이 산화되지 않는다. 장기간 거실 장에 세워두었을 경우 와인을 오픈 했을 때 코르크 마개가 너무 말라 부스러지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와인은 식초처럼 변해 아마도 마시기가 힘들 것이다.

2. 와인은 차갑게 보관해야 한다고 해서 집에 있는 김치 냄새 나는 냉장고에 수개월간 보관 → 수개월 지나 따서 맛보니 김치냄새가 나더군…. 마시다 남은 와인의 경우 더욱 끔찍했던 기억이 났지만 아까워서 모두 마셨다. (참고 : 산화된 와인의 경우 신맛이 강하지만 마셔도 무방하다. 김치가 시어진 효과와 비슷하다.)

3. 어르신이 주는 와인이라 와인의 잔을 들고 받았다. → 와인은 탁자 위에 올려두고 와인 잔의 베이스를 잡는 정도로 하는 것이 와인 서빙 시 안정감이 있어서 좋다.

4. 와인으로 원 샷 → 고가의 훌륭한 와인을 단숨에 들이키면 와인 애호가들이 보기엔 허무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도 한번씩 친구들과 익살스럽게 '원샷'하기도 한다.

5. 와인 폭탄주 - 이른바 “드라큐라 와인”? → 딱 한번 분위기에 휩쓸려 마신 적 있다. 물론 엄청 맛이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숙취로 인해 하루 종일 힘들었다.

6. 멋진 와인과 함께 식사 후 위스키나 맥주로 입가심? → 다음날 머리 아파 죽는 줄 알았다. 가능한 한 과실주와 곡주는 섞지 않아야 머리가 아프지 않다.

7. 오래된 와인 주세요. → “10년도 넘은 와인을 이렇게 싸게 팔아요?”'횡재했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 와인이 변질된 것 같았다. 싸구려 와인의 빈티지가 오래된 것이라면 일단은 의심하고 보아야 한다. 물론 잘 보관했거나 와인자체가 좋을 경우 더욱 훌륭한 맛을 낼 수도 있지만 극히 드물다.

8. 미지근한 화이트 와인? 혹은 따스한 레드 와인? → 마시는 와인의 온도가 적당해야 최고의 와인 맛을 즐길 수 있다.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은 섭씨 7-10도 정도, 레드 와인은 16-18도 정도가 이상적이다.

9. 도미회와 까베르네 소비뇽과의 조화? → 가재나 게요리, 광어와 같은 흰 살 생선과 탄닌이 강한 보르도 와인과 같은 까베르네 소비뇽 품종을 많이 이용한 레드 와인을 잘 못 마시면 메탈릭한 비린 맛이 느껴지므로 조심 할 것. 와인과 음식의 제대로 된 조화는 기대 이상의 미각의 환희를 가져다 준다. 그러나 잘못 선택된 와인과 음식의 궁합은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10. 향수를 뿌리고 갔었던 어느 와인 모임 → 와인이든 음식이든 먹으러 갈 때엔 너무 강한 향수는 금물. 와인과 음식 고유의 향기와 맛에 방해가 된다. 물론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방해가 된다.

그러나 와인 예절에 구속하거나 구속되지 마라. 그리고 어설프게 아는 척도 하지 마라.

“어머 와인 잔은 다리를 잡고 마셔야 해요” 테이블 맞은 편에 앉아 있었던 누군가가 큰 일이라도 난 듯 소리쳤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보니 화려한 색상의 드레스 차림의 약 30-40대 정도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와인 잔은 다리를 잡고요 와인을 서빙할 때엔 테이블 위에 그냥 올려두셔야 해요… “ 마치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설명하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시선을 집중했다.

이날은 어느 호텔에서 진행하는 와인메이커 디너였다. 이미 와인디너는 중간쯤 달리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약간의 취기가 느껴지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당황했고 분위기는 썰렁해 질 수밖에 없다.

한번은 저가의 글라스 와인들을 판매하고 있는 어느 평범한 레스토랑에서 진지하게 테이스팅 하는 광경을 볼 때가 있다. 와인의 색상도 보고 향기도 맡고 그리고 후루룩 가글 하듯 소리를 내면서 와인 테이스팅을 하기도 한다. 너무 진지하게 테이스팅 해서 무언가 하고 와인 병을 보았다. 그것은 캘리포니아산 화이트 진판델이었다. 와인에 너무 오버(?) 하면 벌어질 수 있는 웃지 못할 코미디인 것이다.

만약에 평소에 자주 와인을 마시고 와인이 일상 생활중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면 우리는 와인을 마시는 예절이나 법도에 너무 진지하게 얽매이지 않는 법이다.

와인은 단지 술이요, 음식이다. 좀 더 맛있게 즐기기 위해 우리는 와인의 온도를 따지고 와인의 종류와 음식 매칭을 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좀 더 제대로 즐기기 위한 약간의 작업(?)일 뿐이다. 만약에 와인 예절 내지는 사람들이 규명해놓은 법도(?) 에 구속된다면 그리고 와인이 더 이상 즐기는 술이 아니고 공부하는 대상이 된다면, 와인은 꽤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다.

이렇게 외치고 싶다. "자~ 여러분! 와인을 제대로 즐기기는 하되 숭배하지는 맙시다!"

최성순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