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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신드롬 연민인가, 진짜 바람인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꼭 살아 돌아오라” 박근혜 메시지에 속수무책
■ ‘박근혜 힘’의 원천은 ‘한나라당은 내가 지켰다’는 의식
■ 탈당 출마자 편든 ‘박근혜의 원칙’은 고무줄, 비판
■ 한나라당은 수도권당, MB ‘박근혜 신드롬’ 꿀릴 것 없다
■ 걸림돌 많은 친박 당선자 복당 “박근혜 정치력, 또 시험대”

월간중앙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로 막을 내린 18대 총선의 최대 화두는 ‘박근혜 신드롬’이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한나라당 지원유세 거부’라는 일종의 역선택으로 자신을 총선 최대 변수로 만들었다. ‘사실상의 해당행위’라는 논란도 만만찮았던 ‘박근혜 신드롬’의 허와 실을 짚어본다.


경북지역에서 한나라당 공천으로 출마해 재선에 성공한 A후보. 그는 선거 결과를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친박’을 표방하고 나선 무소속 후보에게 혼쭐난 끝에 어렵게 승리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영남지역 공천 결과를 발표한 것은 지난 3월13일이었다. 선거를 20여 일밖에 남겨놓지 않은 시점이었지만, A후보는 여유가 있었다. 지역정서상 ‘한나라당 공천=당선’이라는 인식이 팽배한데다 무소속 후보의 경쟁력도 낮은 것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이름도 생소한 평화통일가정당 후보까지 포함해 3명이 출마한 터여서 A후보는 내심 70%대의 득표도 가능하리라는 기대 속에 총선에 임했다. 선거 실무자들도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여당 의원을 뽑아야 한다’는 메시지로 나가면 ‘하나마나 한 게임’이 될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선거운동이 사작되기도 전에 ‘돌발상황’이 생기고 말았다. 무소속 후보가 느닷없이 ‘친박무소속’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었다. 무소속 후보는 기자회견을 갖고 “당선되면 한나라당에 입당해 5년 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친박’을 선언한 후보는 그러나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 전 대표를 지원한 적이 전혀 없었다. 박 전 대표 본인이나 그 측근과의 친분은 더더욱 없었다. 이에 A후보 측은 “이 무슨 황당한 얘기냐”며 문제의 무소속 후보를 ‘짝퉁 친박’으로 몰아세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무소속 후보의 ‘친박 선언’은 해프닝으로 그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선거전이 본격화하면서 양상은 조금씩 달라졌다.

무소속 후보는 지난 3월25일, 박근혜 전 대표가 구미에 있는 선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하는 현장으로 쫓아갔다. 운 좋게 박 전 대표와 악수하는 장면을 사진에 담아온 이 후보는 현수막·선거공보물·유세차량 등에 이를 적극 활용했다. 선거사무소는 아예 박 전 대표 사진으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무소속 후보가 심상찮은 움직임을 보이자 A후보 측도 반격의 강도를 높였다. 총선과 지방선거에 잇따라 출마하면서 매번 소속 정당을 바꿨다는 점, 한나라당에 몸담았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 한나라당을 탈당한 점 등을 집중공격한 것이다.

한나라당 탈당 경력을 부각시킨 것은 탄핵 와중의 한나라당을 구하려고 전국을 찾아 다녔던 박근혜 대표의 행보와 대비시켜 유권자들이 ‘짝퉁 친박’임을 인식하도록 하겠다는 의도였다.

1. 총선 때 영남에서는 무슨 일이?
“박근혜가 불쌍하다”… 거센 ‘친박 바람’과 힘겨운 싸움

상황은 다급하게 돌아갔다. A후보 측도 박 전 대표와 찍은 사진을 급히 찾아내 유세차에 부착하고 선거사무소 플래카드도 새로 내걸었다.

하지만 ‘친박 무소속’의 기세도 만만찮았다. 그는 방송연설·후보자합동토론회 등 장이 설 때마다 A후보를 물고늘어졌다. 여느 영남권 초선 의원과 마찬가지로, A후보도 2004년 17대 총선 때 박근혜 대표의 지원유세 덕을 본 경우였다. 현역 의원을 상대로 한판싸움을 벌여야 할 처지의 무소속 후보가 이 부분을 놓칠 리 없었다.

“지금 박 대표가 얼마나 불쌍한 신세가 돼 있느냐? 그런데도 A후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돼 박 대표 얘기는 입에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신의를 저버린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면 나라도 나서서 박 대표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번에 출마했다. 불쌍한 박 대표를 도와 대통령 만들려는 나를 짝퉁이니 가짜니 하면서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존경하는 우리 박 대표를 두 번 죽이는 것이다.”

무소속 후보의 공세에 A후보는 선거 종반으로 갈수록 힘든 싸움을 벌여야 했다. 승리하기는 했지만 표차는 10%도 나지 않았다. ‘한나라당 프리미엄’을 누리기는커녕, 까딱하다가는 질 수 있었던 선거였다.

A후보 측 관계자들은 “상대가 제대로 된 친박이었거나 선거운동기간이 며칠만 더 길었어도 결과가 뒤집어졌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A후보의 한 핵심측근은 “이번 총선은 박근혜의 도움 없이, 박근혜와 싸운 선거였다”며 “후보자나 유권자 모두 박근혜라는 정치인의 영향력을 실감한 선거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2. 다시 입증된 ‘박근혜 신드롬’
“독자정당 만들었으면 제1당 됐을 수도…”

A후보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친박 바람’에 휘말려 낙선한 한나라당 후보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친박’을 표방하고 출마해 당선된 후보는 26명에 달한다. 정당 형태를 갖추고 선거에 임했던 친박연대가 14명을 당선시켰고, 나머지 12명은 이른바 ‘친박무소속’을 표방한 경우였다.

이들은 공천에서 탈락한 현역 의원, 대선 경선 때 박 전 대표를 도왔던 전직 의원, 한나라당 성향의 정치신인 등으로 신분과 성향이 각각 달랐다. 하지만 선거공보물이나 플래카드에 박 전 대표의 사진을 큼지막하게 싣고 선거운동기간 내내 ‘박근혜’를 세일즈했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이번 총선에서 박 전 대표는 친박연대 또는 친박무소속연대 인사들에 대한 지원유세를 하지 않았다. 그처럼 침묵의 지원에 그쳤음에도 자파 인사가 26명이나 당선되는 ‘저력’을 과시한 것이다.

이회창 총재의 자유선진당이 전력투구했음에도 18명을 당선시키는 데 그친 점을 감안하면 총선을 관통한 ‘박근혜 신드롬’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할 수 있다.

친박 당선자들은 한나라당 복당이 여의치 않을 경우 교섭단체 구성도 불사하겠다는 자세다. 이 경우 ‘친박 그룹’은 자유선진당을 제치고 단숨에 원내 제3당으로 도약하게 된다.

선거 후 일부 정치분석가들은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독자정당을 만들었더라면 한나라당과 제1당을 겨루는 상황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내놓을 정도였다. ‘박근혜의 힘’은 이처럼 숫자로만 입증된 것이 아니다. 정치적 함의를 따지면 그 힘을 더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의원들도 ‘친박’ 후보들에게 속속 패한 대목도 ‘박근혜 신드롬’의 정치적 의미를 더한다. 한나라당 제1사무부총장으로 공천심사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정종복 의원, 이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로 통하는 박형준 의원 등이 모두 친박 후보에게 당선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에게 패한 이재오 의원과,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에게 석패한 이방호 의원도 내용상으로는 ‘친박 정서’를 극복하지 못한 경우로 꼽힌다.

3. 다 속았다! 꼭 살아 돌아오라
박근혜식 메시지에 한나라당은 속수무책

박근혜 전 대표는 1997년 정치입문 후 한동안 ‘200자 공주’로 통했다. ‘조국 선진화’ ‘정치개혁’ ‘원칙과 신의’ 등 평소 구사하는 어휘가 극히 제한돼 있음을 꼬집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제한된 어휘에 담긴 단답형 메시지야말로 박근혜 신드롬을 확대재생산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것이 정치분석가들의 일치된 평가다.

강재섭 대표 불출마 선언도 무용

2004년 총선 때 박 전 대표의 메시지는 “한나라당을 살려달라”는 것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 유세 때 피습당해 수술받은 직후 나온 발언은 “대전은요”라는 한마디였다. 이 한마디로 초접전 양상으로 전개되던 대선시장선거는 한나라당의 승리로 기울고 말았다.

특유의 짧은 메시지는 이번 총선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박 전 대표는 측근 의원들이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가슴이 찢어진다” “꼭 살아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한나라당과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박 전 대표는 총선 후보등록을 하루 앞둔 지난 3월23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회견에서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공천은 정당정치를 후퇴시킨 무원칙한 공천의 결정체였다”며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꼭 살아 돌아오라”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언급은 친박 후보들이 총선 선거운동기간 내내 사용한 캐치프레이즈가 됐다.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가 “국민도 속았다”는 말로 당 지도부를 바로 겨냥하고 나서자 강재섭 대표가 서둘러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파장 축소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탄력을 받기 시작한 ‘박근혜 신드롬’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나라당은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중앙당 차원의 지원유세 요청이 잇따랐지만 이에 응할 처지가 못 됐다. 대중적 지명도가 높은 지역구 출마자 가운데 상대 후보를 크게 앞서 ‘여유’가 있었던 정몽준·나경원 후보 등이 ‘반나절 지지’로 접전지역 후보를 지원한 것이 조직적 지원의 전부였다.

접전지역 후보들에 대한 지원을 도맡다시피 한 것은 불출마를 선언한 강재섭 대표였다. 하지만 친박연대 응원에 나선 박사모 회원들로부터 야유세례를 받고 유세를 중단하는 등 강 대표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었다.

한나라당은 공천 과정에서 상당한 내홍을 겪으며 시간을 소비한 탓에 총선전략을 제대로 세우지도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친박 인사들을 따라 동반 탈당하는 실무자가 줄을 잇는 바람에 각 시·도당도 혼선과 혼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에는 “무슨 총선을 이렇게 치르느냐”는 후보 측 관계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친박 후보의 약진이 두드러진 지역의 후보들은 “박 대표의 측근들을 내치면서 대책은 하나도 세워놓지 않았다는 말이냐? 누구 좋으라고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여론조사기관을 운영하는 K씨는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를 빼고 나면 전국적으로 통하는 대중정치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고 평가했다.

“친박세력의 대거 약진이라는 결과만 놓고 보면 한나라당 지도부가 박근혜라는 정치인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하거나 애써 외면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것이 K씨의 결론이다.

4. ‘박근혜의 힘’은 어디서 오나?
‘한나라당은 내가 지켰다’는 의식도 큰 힘

‘3김 이후 최고’라는 말까지 나오는 강한 대중성은 정치인 박근혜의 최대 자산으로 평가된다. 대중정치인으로서의 힘은 박 전 대표가 1997년 한나라당에 입당한 이후 치른 대선·지방선거·재보선 등에서 거듭 입증된 바 있다.

‘박근혜의 힘’은 한나라당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서 나온다고 분석하는 인사도 있다. 정계입문 직후부터 그는 자파 의원이 단 한 사람도 없으면서도 이회창 총재와 맞서는 모습을 자주 선보였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금기시되던 ‘제왕적 총재’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이 총재를 상대로 ‘투쟁’할 때가 더 많았다.

2004년 제17대 총선은 한나라당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애착심을 공고하게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였다 그 후유증에 휘말려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총선을 치러야 했다.

이 위기에서 박 전 대표는 전국 곳곳을 찾아 다니며 “한나라당을 살려달라”고 호소한 끝에 121명의 후보를 당선시키는 성과를 얻어냈다.

선거운동 시작 직전까지만 해도 ‘잘해야 50석 정도 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놀라운 성적표였다. 이때부터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을 ‘내가 살린 당’으로 인식했고, 그러한 인식 자체가 정치적 힘을 배가시켰다는 분석이다.

2007년 여름 대선 후보 경선 룰 확정 때, 그리고 이번 18대 총선 공천 기준을 놓고 이 대통령 측과 갈등을 벌일 때 정가에서는 박 전 대표가 ‘특단의 결단’을 할 가능성을 놓고 설왕설래했다. 박 전 대표가 당을 깨고 나가 독자신당을 만들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인사들은 “탈당 운운하는 얘기는 박 전 대표의 의중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라고 단언했다. ‘내가 지켜낸 당’이라는 인식이 워낙 확고하기 때문에 스스로 당을 깨고 나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5. 이명박계 인사들의 ‘박근혜 비판’
“제대로 돕지는 않으면서 대통령과 같이 놀자고?”

한나라당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주인의식’을 거꾸로 풀이하면 이 대통령은 ‘손님’이라는 의미가 된다. 바로 이 대목이야말로 ‘이명박-박근혜 갈등’의 진짜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잠시 자리를 내주었을 뿐, 한나라당은 언젠가는 우리가 주인이 될 것”이라는 박 전 대표 측의 인식을 이해할 수 없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 이후 이 대통령의 측근 참모들 사이에서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이 아직도 야당인 줄 착각하는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기본적 예우는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었다.

친 이명박계 인사들의 심기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인사가 바로 홍준표 의원이다. 홍 의원은 총선 직후 친박 인사들이 박 전 대표를 ‘국정의 동반자’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홍 의원은 먼저 “‘국정의 동반자’는 경선이나 대선 때의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제에서 특정인을 대통령과 같은 반열에 두는 것은 지도자를 두 사람 두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취임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대통령한테 ‘같이 놀자’고 한다면 대통령은 5년 내내 레임덕에 시달려 국정을 제대로 이끌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의 발언은 억눌려 있던 이명박계 인사들의 박 전 대표를 향한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을 편드는 인사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은, 참으로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었다”며 홍 의원의 발언을 극구 칭찬했다.

아름다운 경선 불구 MB 지원에는 시큰둥

박 전 대표는 1.5%포인트 차로 승부가 갈린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를 흔쾌히 인정함으로써 정치지도자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전 대표로 인해 ‘아름다운 경선’이 가능했다는 점은 이 대통령 측 인사들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 대통령 측 인사들은 “경선 이후부터가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박 전 대표가 이 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 흔쾌히 나서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박 전 대표가 대선 지원유세를 하면서도 경선 때 자신을 도왔던 인사들의 지역만 돌았다는 것을 우선 지적한다. 형식은 이 후보 지원이었지만, 실제로는 총선에 나설 자기 사람 챙기기였다는 주장이다.

대선 막판에 ‘BBK 동영상’이 공개된 후 박 전 대표가 지원유세를 하지 않았던 것을 지적하는 인사들도 있다. 당시 박 전 대표는 피로 누적을 이유로 자택에 머무르고 있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이회창 후보가 연일 박 전 대표를 만나러 갔다 소득 없이 돌아오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당시 이명박 후보 측은 동영상 공개로 ‘50% 득표’에 차질이 빚어질 조짐이 보이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 전 대표에게 ‘막판 공동유세’를 요청했다 거절당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대선 때 이 후보를 지지했던 정치권의 한 인사는 “막판에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함께 손을 잡는 모습만 보였어도 50% 득표는 무난했을 것”이라면서 “박 전 대표가 공동유세를 꺼린 속내가 무엇인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6. ‘박근혜의 원칙’은 ‘고무줄 원칙’ 비판도
측근 공천 압박하고 탈당 출마자 편들고…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총선을 치르면서 스스로 비판의 대상이 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는 논란이 됐던 영남권 공천 결과 발표 후에도 “공천이 다 마무리되는 것을 지켜본 뒤 입장을 밝히겠다”며 막판까지 공천심사위원회를 압박했다.

박 전 대표가 그렇게 해서 특정 측근의 공천을 관철시키는 것을 지켜본 일부 당 관계자들은 “박 전 대표가 스스로를 계파 보스로 격하시키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공천이 마무리된 뒤에는 “가슴이 찢어진다” “꼭 살아 돌아오라”는 말로 측근들의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사실상 묵인했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박 전 대표가 지난 3월23일 기자회견에서 쏟아낸 격한 발언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박 전 대표가 선보였던 이미지와 상치되는 부분이 많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날 회견에서 박 전 대표는 “권력이 모든 것을 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권력이 정의를 이길 수 없다. 결과적으로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이렇게 할 목적으로 공천을 뒤로 미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자파 인사들의 공천 탈락에 승복할 수 없음을 거듭 내비쳤다.

▶텍스트

격한 발언을 쏟아내던 박 전 대표가 급기야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자, 친 이명박계 인사들의 표정은 굳어졌다. ‘누가 속였다’는 표현만 없었을 뿐, 이명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임이 확연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선거운동기간에 자신의 지역구인 대구 달성에 머무르면서 한나라당 후보들에 대한 지원유세는 하지 않았다. 선거운동 막판에 접전지역에 출마한 일부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영상 메시지’를 보내 격려한 것이 당에 대한 지원의 전부였다.

그렇다고 박 전 대표가 ‘친박 후보들’을 지원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침묵으로 친박 인사들을 지원하고 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박 전 대표는 “직접 지원유세를 할 수 없지만 억울한 일을 당한 분들이기 때문에 잘 되기 바란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어느 정당이든 공천 결과에 불복하고 탈당하면 ‘해당행위자’로 분류한다. 탈당에서 그치지 않고 선거에 출마해 원래 몸담았던 당의 후보와 맞설 경우 해당행위의 죄질은 더 중해진다.

자연스레 박 전 대표의 행보는 직접적 해당행위는 아니더라도 ‘해당행위 동조’ 내지 ‘해당행위 방조’로 볼 여지는 있는 셈이다. ‘친박 바람’에 휘말려 낙선한 한나라당 후보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의 행위는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박 전 대표에 대해 단 한마디도 비판하지 못했다. ‘박근혜 변수’가 살아 움직이는 것이 확연한 상황에서 공연한 논란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한나라당은 선거가 끝난 후 안상수 원내대표가 ‘유감 표명’을 하는 선에서 그치고 말았다.

안상수 대표는 선거 다음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총선이 박근혜 전 대표의 승리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친박 의원들을 도운 것은 비판의 여지가 많다고 본다”고 말했다.

7. ‘박근혜 신드롬’을 보는 MB의 인식은?
“아직도 경선하는 것으로 착각하나…”

18대 총선에서 살아남은 친박계는 60명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나라당 공천으로 당선된 경우와, 공천 탈락 후 한나라당을 탈당해 당선된 경우를 합친 수다. 반면 이명박계로 분류되는 인사는 100명이 조금 넘는다. 숫자상으로 보면 박 전 대표 측이 소수다.

하지만 한나라당 소속 당선자가 153명이라는 ‘턱걸이 과반’에 그침으로써,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의 협조 없이는 자신의 의중대로 정국을 끌고 갈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총선에서 드러난 ‘박근혜 신드롬’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박 전 대표 측이 여전히 이 대통령 측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상황이어서, 이에 대한 해답은 총선 이후 정국에서 ‘박근혜의 힘’이 어느 정도 파괴력을 띠면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 것인지 가늠해 보는 ‘참고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총선이 끝난 다음날인 지난 4월11일 오전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회동한 데 이어 저녁에는 한나라당 총선 선대위 관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이날 이 대통령은 ‘박근혜의 힘’이 주요 변수가 됐던 총선 결과를 보는 시각을 여러 대목에서 드러내 보였다.

“한나라당은 영남당 아닌 수도권당” 자신감

이 대통령의 발언 가운데 정치권 인사들이 특히 주목한 부분은, 선거 결과를 ‘수도권에서의 선전’으로 보는 대목이었다.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수도권의 111석 가운데 81석을 차지한 것을 거론하면서 “수도권에서는 사실상 지역정서가 없어진 것 아니냐? 한나라당이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언급은 총 68석 가운데 46석을 차지하는 데 그친 영남지역 선거 결과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은 16대 총선에서는 영남의 64석 전체를 싹쓸이했고, 17대 총선에서도 68석 가운데 60석을 휩쓸었다. 당시와 비교하면 영남권의 비중은 크게 줄어든 셈이다. 한나라당이 차지한 153석에서 수도권의 비중은 52.9%에 달하는 반면 영남은 30.1%에 그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수도권 선거 결과에 각별히 의미를 부여한 것은, 한나라당이 ‘영남당’에서 벗어나 ‘수도권당’이 됐음을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박 전 대표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에서 탈피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선대위 관계자들과의 만찬에서 나온 이 대통령의 발언도 정치권의 화제가 됐다. 이 대통령은 폭탄주가 수차례 오간 것으로 전해진 만찬석상에서 “친이니 친박이니 하는데, 아직도 경선국면으로 착각하는 것 아니냐”고 발언한 것으로 보도됐다. 총선 최대 이슈였던 ‘친박 논란’에 대한 편치 않은 속내를 드러내 보였다는 분석이 바로 뒤따랐다.

이 대통령은 “국내에 내 경쟁상대가 있느냐? 내 경쟁상대는 외국 지도자이고, 내 관심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는 발언도 했다. 다분히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들리는 대목이었다.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들리는 이 대통령의 언급은 더 있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조기 개최 주장이 제기된 전당대회를 예정대로 7월에 치르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대통령은 “정치일정은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조기 전당대회 반대의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내심은 ‘박근혜의 당권 장악 반대’에 있다는 분석이 더 많았다. 실제로 친박연대의 대표주자 격으로 대구에서 출마한 홍사덕 당선자는 선거운동기간 내내 “총선이 끝나면 바로 전당대회를 열어 박근혜 전 대표를 새 대표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신의 심복이자 유력한 대표 후보로 거론되던 이재오 의원이 낙선한 마당에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조기 전당대회를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8. 친박 당선자 복당 둘러싼 갈등
박 전 대표 당권 도전 여부가 관건일 듯

18대 총선은 ‘박근혜 신드롬’ 속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박근혜 신드롬이 남긴 것이 있다. 바로 한나라당 울타리 밖에 있는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문제다.

박 전 대표는 선거 다음날인 지난 4월11일, 탈당한 측근들의 복당문제와 관련해 “당연히 복당돼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만약 당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공천이 잘못됐다는 것을 아직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이번 총선을 통해 나타난 민의를 거스르는 일”이라는 언급도 덧붙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일단 ‘복당불가’ 방침을 세운 분위기다. 강재섭 대표부터 “총선에 담긴 유권자들의 뜻은 인위적 정계개편을 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며 당 밖의 친박 인사들에 대한 복당불가 방침을 공식화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도 “정치문제는 당에서 알아서 하면 된다”면서 강재섭 대표의 입장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친박 인사들의 복당문제를 놓고 이처럼 신경전이 치열한 것은, 이들의 복당이 당권경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전당대회가 열리면 전국의 각 당원협의회(옛 지구당)를 이끄는 위원장들이 추천한 대의원들이 대표를 선출한다. 따라서 당권에 도전하는 인사 입장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확보해야 한다.

박 전 대표는 아직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할 것인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당권 도전에 나설 경우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사정을 간파해서인 듯, 당권 도전이 유력시되는 정몽준 의원도 친박 인사들의 복당에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정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충격을 이해하지만, 그분들 때문에 적잖은 후보가 낙선한 한나라당도 상처가 컸다”며 “복당문제는 대화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소장파 지분으로 당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원희룡 의원은 “필요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친박 인사들의 복당에 반대의 뜻을 명확히 했다. 같은 소장파인 남경필 의원도 “총선 민의에도 맞지 않는다”며 입당 반대를 거듭 주장하는 실정이다.

4월 중순 현재 친박 인사들의 복당에 긍정적인 인사는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 정도에 불과하다. 그는 “기다리면 모든 것이 순리대로 잘될 것”이라며 복당 허용 쪽에 무게를 두는 언급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9. 걸림돌 많은 친박 당선자 복당
“박근혜의 정치력, 시험대에 오르다”

한나라당이 친박 당선자들의 복당을 허용한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풀리는 것은 아니다. 친박연대 소속인 8명의 비례대표 당선자들의 경우 한나라당 입당을 위해 탈당하는 순간 의원직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이를 피하는 방법은 한나라당과 친박연대가 ‘당 대 당 통합’을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통합’이라는 형식까지 취해가면서 이들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따라서 복당을 허용하더라도 친박연대 소속이 아닌, 친박무소속 당선자들이 우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 전 대표가 당권 도전에 나설 경우 이들의 복당 허용 시점은 물론 친박연대와의 통합문제를 둘러싸고 또 한번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다.

박 전 대표가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하지 않는 가운데, 한나라당도 친박 인사들의 복당을 서두르지 않는 상황도 가정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박 전 대표가 정치적 입장을 어떻게 조율해 나갈지 관심이다.

민감한 안건을 놓고 여야 간 표대결이라도 벌어질 경우 당 밖의 친박 의원들이 한나라당과 공조하느냐 아니면 각을 세우느냐에 따라 정국의 흐름이 갈리는 상황도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친박 열풍’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거듭 입증해 보였다는 데는 정치권 인사들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라면서도 “하지만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박 전 대표는 이제부터 정치력을 본격적으로 시험받게 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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