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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담배꽁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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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임진왜란 뒤 담배가 처음 들어왔다. 그 후 불과 20여 년 만에 전국으로 퍼졌다. 중국에서 전래된 목화가 100년에 걸쳐 서서히 퍼진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다. 인조 때 우의정을 지낸 장유는 어전회의에서도 담배를 피웠을 정도로 애연가였다. 그는 1635년 저술한 『계곡만필』에서 “우리나라에서는 20여 년 전에 처음 피웠는데, 지금은 위로 높은 벼슬아치와 아래로 심부름꾼에 이르기까지 피우지 않는 이가 없다”면서 “100년 뒤에는 반드시 차(茶)와 이익을 다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1668년 네덜란드의 선원 헨드릭 하멜은 『하멜표류기』에서 “조선 사람들은 아이들도 4, 5세만 되면 담배를 피운다”고 기록하고 있다.

임금 중에는 정조(1752~1800)가 대표적 애연가로 담배예찬론을 남겼다. “화기(火氣)로 한담(寒痰)을 공격하니 가슴에 막혔던 것이 자연히 없어졌고, 연기의 진액이 폐장을 윤택하게 하여 밤잠을 안온하게 잘 수 있었다. 쓰임에 유용하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 말하자면 차나 술보다 낫다고 할 수 있다.” 정조는 “(담배를) 우리 강토의 백성에게 베풀어 혜택을 함께하고 효과를 확산시켜 천지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려 한다”며 신하들에게 흡연 장려 정책안을 제출하라고 지시하는 책문(策問)을 내리기도 했다.

그 배경에는 담배가 몸에 이롭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허준이 편찬한 『동의보감』의 서술이 이를 뒷받침한다. “연초는 맵고 열이 있어 장담, 한독, 풍습을 몰아내며 살충 효과가 있다. 연초는 양성으로 쉽게 이행하고 퍼지므로 냉한 음식에 체한 데 쓰면 신효하다.”

그러나 담배의 정체를 일찌감치 간파한 선각자도 있었으니 실학자 이익(1681~1763)이 그다. 그의 『성호사설』은 흡연의 10가지 해악을 지적했다.

“안으로 정신을 해하고 밖으로는 귀와 눈을 해치고 머리칼이 희어지고 얼굴이 창백해지며 이가 빠지고 살이 깎이고 사람을 노쇠하게 한다. 더 해로운 것은 냄새가 배어 신과 사귈 수 없고 재물을 소모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오늘날 담배의 해악을 논할 때 이익의 선견지명에 하나를 더 보태야 한다. 환경을 해치고 화재의 위험을 부르는 담배꽁초 문제다. 서울시는 꽁초를 무단으로 버리는 행위를 이달 말부터 집중 단속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적발되면 과징금도 상당하다고 한다. 이제 실내는 대부분 금연이고 야외에서는 꽁초 버릴 자리를 먼저 보고 담뱃불을 붙여야 하는 세상이 됐다. 흡연자들이여, 이렇듯 누추하게 내몰리느니 차라리 담배 끊는 것이 어떨까. 흡연 천국이었던 조선시대로 시곗바늘을 되돌릴 수 없으니.

조현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