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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칼럼>여성도 자신의 목소리 전달할 의무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978년 어느 여름날 나는 아칸소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남편(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동부 아칸소州의 한 작은 마을에서 호별 방문을 하고 있었다.
때는 한낮이라 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태반이 중년 이상의여성들이었고 나는 이들 대부분이 선거날 투표에 참가하리라 믿고있었다. 그러나 한 여성이 자신의 가족중에서 투표하는 것은 남편뿐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다른 여성은 그녀의 남편이 죽은 후 도대체 누구에게 투표해야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후 17년이 지난 올해 미국의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은지 75년째를 맞이하게 됐다.그러나 우리 주변의 많은 여성들이 그렇게 힘겹게 얻어낸 투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있음을 목도하게된다. 오늘날 30년전보다 소수의 여성들이 각종 선거에 참여하고 있을 뿐이다.대통령선거가 아닌 경우 여성들의 투표율은 50%에도 못미치는 형편이다.
이런 현실은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짊어져야할 짐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많은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받아가며 더 오랜 시간 일해야하는 동시에 가정도 돌봐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여성들은 투표하러 갈 짬을 내야만한다.더구나 요즘은 州정부의 사회복지 관련 사무실.공공도서관,심지어 우편을 통해서도 선거인 등록을 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가 아닌가.
여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만 할 의무가 있다.
1848년 처음 참정권 운동을 시작했던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튼,1872년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하려다 체포돼 재판 끝에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수전 앤터니등의 눈물겨운 노력이 그 뒤에 있다. 또 재봉사에서부터 사교계 명사에 이르는 수천명의 여성들이참정권 획득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각종 퍼레이드와 행사에 참가했었다.
남자들도 여성의 참정권 획득에 일익을 담당했다.테네시州 출신의 젊은 의원 해리 번은 어머니의 권고가 담긴 편지에 영향을 받고 1920년8월18일 역사적인 표결에서 여성의 참정권 획득에 찬성표를 던져 8일 후인 8월2■일 참정권이 인정됐다.그 때문에 번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했지만 그가 겪은 고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옥고를 치러야 했으며 사람들로부터 질시를 받아야 했다.기금 마련을 위한 활동을 하느라 일자리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미합중국 헌법 수정조항 19조가 개정되면서 허용된 여성 참정권은 하나의 작은 사회 혁명이었다.투표할 권리를 획득하면서부터미국 여성들은 입법활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고 시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완전히 향유하게 됐다.
외국을 여행할 때면 나는 참정권 문제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최근 여행을 다녀오면서 나는 여성들의 기본적인 정치.법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애쓰다 박해받고,심지어는 투옥당한 여성들을 만난 적이 있다.
또 전체주의의 멍에에서 벗어난 국가의 국민들이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수시간동안 길게 늘어선 모습을 목격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미국인들이 누리고 있는 축복스런 현실에 감사하며 귀국길에 올랐다.이번 週에는 우리를 대신한 수많은사람들의 희생에 의해 얻은 여성 참정권에 대해 함께 축하하자.
그리고 참정권 획득을 위해 힘쓴 전세계의 위대한 지도자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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