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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들은 대식가이고 힘이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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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00년대 초 조선 소녀들의 모습. 『조선의 소녀 옥분이』에 실린 사진이다.

“(조선)사람들은 살갗이 희고 활기차며, 대식가이고 힘이 아주 좋다.” “남자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잘 때까지 모자를 쓰고 있어야 한다.” “조선어의 자모는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지만 단순하다는 사실 때문에 하층민과 여성만 이 문자를 사용한다.”

이방인들의 눈으로 본 우리 옛 모습이다. 15일 살림출판사에서 출간한 ‘그들이 본 우리’총서 『임진난의 기록』『백두산으로 가는 길』『조선의 소녀 옥분이』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 총서는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서양에서 출간된 한국 관련 고서를 번역한 시리즈다. 한국문학번역원과 명지대-LG연암문고가 공동 추진하고 있는 ‘서양고서 국역출판사업’의 성과물이다. 번역원 등은 2012년까지 91종의 관련 고서를 번역할 계획이다.

이번에 출간된 『임진난의 기록』은 1563∼1597년 일본에서 활동한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의 저서 『일본사』 중 임진왜란에 관한 부분을 우리말로 옮겼다. 또 『백두산으로 가는 길』은 1891년 제물포로 입국한 영국인 장교 앨프리드 에드워드 존 캐번디시가 한양과 원산을 거쳐 백두산으로 등정하는 여행기이며, 『조선의 소녀 옥분이』는 1903∼1912년 조선에서 감리교 선교사로 활동했던 미국인 미네르바 구타펠의 에세이다.

책에는 당시 조선의 생활상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백두산으로…』의 저자는 부사 행렬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부사는 궤짝 비슷한 의자에 앉은 채 들려서 이동했으며, 앞뒤로 종자들이 수행했다. 종자들 중 일부는 창으로 무장했고 몇 명은 나팔, 몇 명은 부채를 들었다. 대인이 지날 때 행인들에게는 정중한 태도가 요구되었다. 그의 ‘군졸’ 한 명이 가끔 담배를 끄지 못한 남자에게 달려들어 담뱃대를 빼앗아 부러뜨려 내던지고는 부채로 담배 피우던 자의 머리를 후려쳤다.”(37쪽)

조선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우월의식도 여과없이 내비쳤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내뿜는 여러 가스와 고체 배설물은 남녀를 불문하고 형편이 되는 대로 가장 편리하게 처리된다”(『백두산으로…』 178쪽), “(조선인들의 옷은) 그다지 희지 않아. 우리 옷도 서너 달, 혹은 다섯 달에 한 번씩만 빤다면 그렇게 희지 않을 거야(『조선의…』 119쪽)”라는 식이다.

총서 발간을 총괄하고 있는 한국문학번역원 윤지관 원장은 “서구의 시선을 종합해 우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은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향후 세계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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