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아쉬움이 쌓이는 소리/내 마음 무거워지는 소리~” 경쾌한 주제가가 아직도 생생한 ‘퀴즈 아카데미’는 1980년대 후반 신선한 충격이었다.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던 대학가에 ‘지성과 낭만’이라는 화두를 던졌고, TV에 비친 대학생 이미지를 바꿔놨다. 87년 10월 18일 첫 방영은 스타 PD 주철환(현 OBS 사장) 시대의 출발이기도 했다.
- 80년대의 낭만 ‘퀴즈 아카데미’의 주철환 PD
“장학퀴즈의 고답적인 느낌을 넘어 낭만주의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지식을 얻으려고 보는 게 아니라 퍼스낼러티의 충돌이 빚는 드라마를 보게끔 말이죠.”
두 명이 팀을 이뤄 참가하는 ‘퀴즈 아카데미’는 8팀이 토너먼트를 거쳐 그 회 우승팀이 전 주 우승팀과 승패를 가리는 식이었다. 7주 연승팀에는 14박15일의 유럽여행 기회가 주어졌다. 해외여행 자체가 드물던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여름사냥’ ‘분열에서 융합으로’ ‘자하연’ ‘이대오르기’ 등 독특한 이름과 개성으로 무장한 대학생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세련된 옷차림에 명민한 언니·오빠의 이미지는, 그러나 일정 부분 연출된 것이었다. “당시 대학생의 영어 리스닝 실력이 얼마나 됐겠어요. 외국인 출제자가 열 번씩 반복해 불러주면 겨우 맞히곤 했는데 편집할 땐 한번에 맞힌 식으로 했죠. 승부를 조작하지 않는 선에서 쇼적인 요소를 활용한 거죠.”
‘퀴즈 아카데미’는 대학생 경연의 장이었을 뿐 아니라 대학문화를 안방에 알리는 역할도 했다. 안치환·한돌 등 대학가 스타들이 TV에 처음 출연한 것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출제 문제 또한 한국 학생운동사나 마르크스주의 등 ‘시사 이슈’를 따랐다. 이 때문에 곡절도 겪었다.
“한번은 답이 ‘서북청년단’이었는데, 설명 지문이 단체를 잔인하게 묘사했다고 해서 불만을 품은 후손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어요. 검사 앞에 불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한 끝에 소송을 무마할 수 있었죠.”
90년 10월 다른 PD에게 바통을 넘긴 뒤 주 PD는 ‘일요일 일요일밤에’로 옮긴다. 이경규가 몰래카메라를 한창 할 때다. 주 PD는 이 몰카를 ‘퀴즈 아카데미’ 현장에 들이댔다. 이른바 ‘새 발의 피’ 몰카다.
몰카 주인공 가수 이범학이 황당하기 짝이 없는 문제를 불러주는데도 대학생들은 갸우뚱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맞혔다. 이때 ‘정답’을 맞혔던 ‘달과 육백냥’ 팀의 이주한은 나중에 방송사 PD가 됐다. 이 밖에도 PD·아나운서·기자가 된 이가 부지기수다. 언론사 입사용으로 시사 공부를 하다 겸사겸사 출연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주 PD는 차인태 아나운서와 별난 인연이 있다. “차 아나가 ‘별이 빛나는 밤에’ DJ를 하고 있을 때 제가 예비 대학생이었는데, 엽서가 채택돼 전화 연결이 됐어요. 제가 ‘고대 간다’고 하자 그분이 ‘난 연대 나왔다’고 반겨주셨죠.
사실 고등학생 때 ‘장학퀴즈’ 출연하고 싶어서 예비시험까지 통과했는데, 녹화 일정을 놓치는 바람에 출연은 못 했어요. 대신 대학원 다닐 때 ‘퀴즈 특급’에 출연했는데, 그 진행자가 차 아나였죠. MBC 입사해 처음 맡은 게 ‘장학퀴즈’ 조연출이고,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으로 PD ‘입봉’한 데다 퇴사 전 마지막으로 연출한 게 차 아나가 진행한 ‘평양 민족통일음악회’였으니 보통 인연이 아닌 셈이죠, 하하.”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안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