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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피치] 148. 김응룡과 이순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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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면

쿠데타는 진압됐다. 1996년 2월,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해태 타이거스의 하와이 전지 훈련 때였다. 코칭스태프의 강압적인 지휘에 반발한 선수들이 단체행동으로 반기를 들었다. 팀 전체가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다. 반발한 선수들의 리더는 이순철이었다. 그리고 조계현.송유석.정회열 등이 앞장을 섰다.

당시 해태 김응룡 감독은 노련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승부사답게 불이 더 번지는 것을 막았다. '팀을 위해서'라는 명분에 선수들도 한발 물러섰다. 해태는 그렇게 하와이 전지훈련을 무사히 마쳤다.

96년 해태는 선동열이 일본으로 떠난 후 전력이 약해진 팀이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뒤엎었다. 해태는 한국시리즈에서 현대를 물리치고 V8을 이뤄냈다. 항명의 소용돌이를 지혜롭게 극복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앙금은 지워지지 않았다. 상처는 치유된 것이 아니라 곪아있었을 뿐이었다.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김응룡 감독은 송유석을 LG로 트레이드했다. 그는 당시 앞장섰던 선수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지도층에 반발해 고개를 쳐들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했다.

97년 시즌 후반기 광주경기였다. 김응룡 감독이 외야수 이순철을 경기 중간 대수비로 기용했다. 이순철의 타석이 돌아왔다. 이순철이 방망이를 들고 타석으로 향하려는 순간, 김감독이 "타임"을 불렀다. "대타!". 그런 식의 선수교체는 선수들에게 치욕적이었다. 모멸감에 얼굴이 벌게진 이순철은 그 길로 가방을 꾸려 경기장을 떠났다.

그 순간 해태에서 김응룡과 이순철의 인연은 끝났다. 김감독은 그해 한국시리즈 출전선수 명단에서 이순철의 이름을 뺐다. 97년 해태는 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해 겨울로 '하와이사건'의 주역들은 모두 팀을 떠났다. 누군가는 '숙청'이라고 했다. 이순철.조계현.정회열이 쫓겨가듯 삼성으로 팀을 옮겼다.

이순철은 98년 삼성에서 은퇴했고, 99년부터 삼성 코치가 됐다. 이순철과 김응룡의 불편한 관계는 2000년 말, 김응룡이 삼성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한번 더 꼬였다. 이순철은 더 이상 삼성에 남을 수 없었다. 이순철은 결국 또 한번 짐을 꾸렸고, LG 코치로 옮겼다. 이순철은 3년 동안 LG에서 지도자로서 입지를 굳혔다. 그리고 지난해 말 LG의 감독이 됐다. 한 팀의 수장(首將)으로 김응룡 감독과 같은 위치에 선 것이다.

운명의 신은 둘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지휘봉을 잡은 이순철 감독의 첫 공식 경기 상대는 김응룡 감독의 삼성이었다. 지난 13일 대구구장. 경기 전 이순철 감독은 삼성 감독실로 찾아가 김응룡 감독을 만났다.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

"요즘 무릎이 안 좋아 산에도 못 다녀."

"많이 걸으셔야 합니다."

"우리 팀은 아픈 선수가 많아 골치야."

의례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두 감독은 주말 이틀간 1점차 승리를 주고 받았다. 이순철 감독은 "7년 전 광주에서 그렇게 헤어질 때 김감독님과 내가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는 흐르고 인연은 돌고 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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