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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와 관우를 한팀으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5호 10면

사실적인 허구. 이 자기모순적 특징 때문에 우리는 컴퓨터 게임에 매혹된다. 세부적인 이야기가 사실적이면 사실적일수록, 그로부터 이뤄지는 허구적 이야기가 힘을 지니는 건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모든 문화적 산물의 공통점이다.

게임으로 다시 쓰는 『삼국지』

그러나 게임에선 이 모순의 사이에 한 가지 요소를 더 집어넣었다.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허구라는 요소다. 이제 사실과 허구라는 갭에 ‘희망 사항’이라는 요소가 작동한다. 희망은 언제나 부재와 결여다. 무언가 모자라고, 아쉽고, 없기에 우리는 희망한다. 게임이 지니는 바로 이 구조가 『삼국지』를 원한다.

『삼국지』에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삶은 그들이 살아가는 곳들,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해야만 했던 일들로 짜여 있다. 그러나 그 삶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허구들, 신의 뜻을 받은 보잘것없는 평민이 세계를 구할 힘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돕는 그런 허구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결함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그런 결함들이 만들어 내는 안타까움으로 점철된다. 왜 장비는 술을 그렇게 마셨을까? 왜 조조는 그렇게 사람을 믿지 않았을까? 공명은 왜 하필 유비를 만났을까? 여기서 아쉬움이 싹트고, 안타까움이 생겨난다. 그래서 원한다. 이들의 삶이 다르게 엮이고, 다른 결과가 만들어지기를.

‘코에이’가 만든 전략 시뮬레이션 ‘삼국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고, 널리 알려진 이 게임에서 게이머는 원하는 나라, 원하는 인물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찾아내고 등용해 ‘드림 팀’을 만들어 자기 방식으로 천하를 통일한다.

조조, 거기다 심지어 사마의가 등장하는 데 화가 났던 사람은 착하기만 한 유비로, 아니면 스타일 있는 손씨 집안으로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 관우와 여포를 한 팀으로 묶어 최강 무장팀을 만들 수 있는 건 물론이다.

품성·세계관, 그리고 천하의 미래 같은 것에 관심이 없다면 이 수많은 맹장을 이렇게 묶어 싸워 보기도 하고, 저렇게 묶어 싸워 보기도 한다. 역시 ‘코에이’의 ‘삼국무쌍’ 시리즈는 오로지 그 수많은 무장의 엄청난 무력을 마음껏 발휘해 볼 수 있는 멋진 기회다. 그러다 보면 뜻밖의 인물도 등장한다.

오 나라의 여걸이자 유비의 부인이었던 손상향이 천하의 맹장이 되어 전쟁터를 뛰어다닐 수도 있다. 반드시 잡졸과 부닥치는 것만은 아니다. ‘무쌍’ 시리즈의 스핀오프 버전인 ‘무쌍 오로치’에서는 이제 마왕 오로치를 잡기 위해 『삼국지』의 무장들(그리고 여기에 더해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까지)로 환상의 태그 팀을 구성해 전투에 나서 볼 수도 있다.

『삼국지』는 ‘코에이’만 잘 만드는 건 아니다. ‘세가’가 내놓은 아케이드 카드 게임 ‘삼국지대전’은 자기가 원하는 장수의 카드들을 사용해 자신만의 전술로 역사적 전투를 경험한다. 이제 단순한 무장 팀이 아니라 군사까지 총망라한 정말 드림 팀이 필요하다.

여기까지가 그래도 정통적이라면 이런 상상은 어떨까? 너무 매력적인 『삼국지』의 영웅들이 모두 여성이 되어 남성 게이머에게 사랑의 고백을 하는 상상 말이다. 일본에서 나온 성인용 게임 ‘연희무쌍’은 이런 꿈 그대로 모든 캐릭터를 귀여운 미소녀로 바꿔 천하를 놓고 싸움을 벌이게 된다. 천하통일 후 이들과 사랑으로 맺어지는 건 물론이다. 아, 당연히 이 게임에선 초선이 남성이다.

게임은 원하는 것을 이뤄준다. 『삼국지』는 그 생생한 이야기 속에서 벌어지는, 때로는 경이롭고, 때로는 안타깝고, 때로는 슬픈 삶들을 보여준다. 이 속에 뛰어들어 보다 나은 세계를, 보다 멋진 영웅이 되어 보기를 꿈꾸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건 글로 쓰인 텍스트에선 실현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게임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게 많은 『삼국지』관련 게임이 나온 건 그래서 당연하기까지 한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허기져 있다. 채워지지 않는 수많은 아쉬움. 이 아쉬움이 있는 한 『삼국지』는 또 다른 이름으로 신작 리스트의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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