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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심사위’ 있으나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를 한 달여 앞둔 올해 1월 1일 경제인·공직자·정치인 등 모두 75명을 특별사면·감형·복권해줬다. 당시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은 형 확정 4일 만에 사면 대상에 포함돼 ‘사면권 남용’이란 비판을 받았다.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조차 “김대중 정부 빚 갚기 성격의 사면”이라고 반발했을 정도다.

법무부는 이 같은 사면권 남용을 막기 위해 특별사면을 실시할 때 법무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9인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하는 사면법 시행령·시행규칙을 27일자로 공포·시행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초 알려진 내용과 달리 시행령·시행규칙상 사면심사 내용의 공개 범위를 ‘사면심사위원회가 대통령에 상신이 적정하다고 심사한 사안’으로 제한키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면 실시 10년 뒤 공개하기로 한 회의록도 사면심사위가 적정으로 판정한 대상자만 공개키로 했다.

또 “개인의 신상을 특정할 수 있는 부분은 삭제한다”고 규정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사면심사위원회가 ‘부적정하다’고 판단한 사람에 대해 사면을 강행해도 확인할 길이 없게 된 것이다.

사면심사위의 구성도 ‘법무장관·법무차관·기조실장·법무실장·검찰국장과 대검찰청 기조부장, 공판송무부장 등 고위 공무원 5명, 법학교수·변호사 등 민간인 4명을 임명 또는 위촉한다’고 돼 있어 다수결 방식에서 독립성이 보장될지도 문제다.

고려대 김일수(법학) 교수는 “심사 내용 공개를 제한한 것은 사면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제도 도입 취지를 유명무실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개인 신상에 대한 명예훼손 우려 때문에 사면심사위에서 적정으로 판정한 대상자만 공개키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1948년 일제 때 수감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제정된 사면법은 지난해 말 60년 만에 처음 개정됐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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