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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개여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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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물 흐르는 지형에 경사가 생겨 흐름이 빨라지는 곳. 땅 모양새와 물살의 세기로 인해 자갈이 바닥에 많이 깔려 다른 여느 곳에 비해 물 흐르는 소리가 크게 나는 곳. 아름다운 우리말 여울의 뜻이다.

개천의 여울이란 뜻의 개여울은 소월의 시에 등장한다. 1966년 처음 만들어졌으나 72년 가수 정미조에 의해 다시 불린 노래로 유명하다. 정한(情恨)의 시인으로 불리는 소월은 그곳에서의 정서를 이렇게 읊었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당신’과 말하는 이의 관계가 축이다. 그냥 보면 떠난 님에 대한 회고조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흐르는 것, 없어지는 것에 대한 소월 나름대로의 리뷰가 담겨 있는 듯하다. 물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가는 것’들을 상징한다. 없어지고 소멸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정서가 시의 큰 얼개를 이룬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의 대목에서 시인은 지금에서의 없어짐이 그저 소멸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언뜻 보면 체념이지만 그를 자연의 섭리 속에서 받아들이려는 현실 세계에서의 긍정이 여운으로 남는다.

요즘 자리 잡은 곳에서 떠나지 않으려는 자, 흐름을 막지 말고 얼른 물러나라며 소리치는 자의 다툼으로 소란스럽다. 흘러 지나가는 것의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자면 문제는 복잡하지 않을 터. 그러나 굳이 지킬 게 많다고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이 봄이 수상하다.

중국식 버전으로 이를 저울질해 보면 떠오르는 성어가 있다. ‘급류용퇴(急流勇退)’다. 급류 또한 물살이 세게 흐르는 상황, 따라서 여울의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싶다. 그곳에서 흐름의 뜻을 거역하지 않고 물러나는 행위가 용퇴다. 지금 물러나도 용기 있게 떨치는 것이 아니라 ‘용(勇)’이라는 글자가 어울리지는 않겠다. 그래도 시세를 알고 물러나면 뒤늦게나마 박수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어린 생명이 무참하게 스러지는 스산한 봄에 정치의 여울목에 나가 앉아본다. 좀 더 나은 사회를 정치권이 만들어낼 수 있을까 기대하지만 만만치가 않다. 비켜서지 않으려는 자, 옥석을 가리지 않고 모두 물러나라고 호통만 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마음이 영 개운찮은 이 봄의 여울목이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