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폭력·불륜·외모지상주에 제동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방송위원회가 "(위험수위에 달한) 일부 지상파 방송의 선정성을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그 예로 최근 범죄 보도.아침 드라마 등에 대해 개선을 촉구하는 '권고' 결정을 잇따라 내렸다. 보름 사이 벌써 세 번째 권고문이 KBS 등 방송 3사로 향했다.

'권고'는 행정지도의 하나로 프로그램 제작 태도와 방향에 주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방송위 심의1부 관계자는 "'건강한 TV'를 만들자는 차원으로,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도 몇가지 아이템을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범죄보다 범죄보도가 더 자극적?=방송위 산하 보도교양제1심의위원회는 지상파 3사 메인 뉴스와 5개 시사.생활정보 프로그램이 지난달 1~17일 내보낸 범죄 보도 125건을 집중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 4일 "상당수 범죄 관련 보도가 선정적.흥미 위주로 다뤄질 뿐 아니라 모방 범죄도 우려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방송위에 따르면 방송사들은 우선 버스 기사.왕따 학생 폭행 등의 사건에서 마치 스포츠 중계방송하듯이 폭력 장면을 내보냈다(본지 2월 26일자 19면). '로봇팔 절도범죄' 등과 관련해서는 CCTV 자료.재연 화면.컴퓨터 그래픽 등을 총동원해 범죄 수법을 '친절히' 설명했다.

*** 범죄보도 모방 우려

특히 시사정보 프로들은 반사회적 범죄사건을 지나치게 길게 내보내는가 하면 너무 가볍게 접근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우려되는 대목도 많았다. 노숙자 지하철 살해사건 용의자가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것을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았고, 피해자의 어린 아들의 얼굴을 근접촬영하기도 했다.

어린이들을 다루는 방식도 문제였다. "언니 오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선생님 놀이 하고 싶어요,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실종 어린이의 동생과 인터뷰를 해 언니에 대한 상실감을 되새기게 하고, 병원에 입원 중인 어린이를 촬영하면서 죽은 누나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가족 동반 자살' 보도에선 아이의 얼굴을 천으로 덮는 등 죽음을 상징하는 장면을 재연으로 꾸몄다.

◇아침드라마는 '불륜의 온상'="아침 드라마를 보면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신다""내 남편의 행동에 의심이 간다."….

방송사 홈페이지에 오른 주부들의 글이다. 아침 드라마의 비윤리성은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경실련 미디어워치 김태현 부장은 이를 "선정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시청률이 잘 나오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요즘 방영 중이거나 최근 종영한 드라마만 들여다봐도 답이 나온다. MBC '성녀와 마녀'. 불륜.이혼.동반자살 기도.복수 등이 고루 녹아 있다. 60대 유부남이 자신의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의 생모와 사랑에 빠진다. 그 아들 역시 유부남인데도 과거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한다.

또 KBS1TV 'TV소설 찔레꽃'에선 바람을 피워 낳은 딸, 남편에 대한 복수심을 키워가는 아내, 언니의 남자를 빼앗는 동생 등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2TV '나는 이혼하지 않는다' 역시 어김없이 유부녀와 젊은 사진작가의 불륜이 등장한다.

이밖에 최근 종영한 SBS '이브의 화원'도 남편이 결혼 전에 사귀던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나면서 결국 이혼으로 막을 내렸다.

이와 관련, 방송위는 10일 "아침드라마들은 방송의 공적 책임과 심의규정(윤리성)을 위반했다고 판단되나, 창작의 자유를 감안해 (스스로 개선하도록)권고키로 했다"고 밝혔다.

*** '비만 = 열등' 조장시켜

◇외모 지상주의 부추기기=방송위는 또 방송이 외모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조장하는 한편 못생긴 용모를 희화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우선 KBS '비타민'의 경우 '몸짱' 아주머니를 등장시켜 '몸매=건강'이란 등식을 요구하고 있다고 방송위는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주부들이 "살찐 뒤부터 남편이 밤마다 날 멀리 한다""뚱뚱해서 창피하다"고 말하는 부분을 방영함으로써 살에 대한 죄의식을 은연중 강요하기도 했다.

또 SBS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 중 '비둘기 합창단' 코너는 여성의 외모를 '깜찍이'와 '끔찍이'로 차별했다. 특히 특정 외모에 대해서는 "얼굴 다음이 바로 몸통이네. 목이 없네" 등으로 비하하기도 했다.

이상복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