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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곳지금은>白凡 암살된 京橋莊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서울종로구평동 고려병원 본관건물 현관으로 쓰이는 2층 건물이독립운동과 건국운동에 평생을 바친 백범 김구(白凡 金九)선생이암살당한 비극의 현장인 「경교장(京橋莊)」이었다는 사실을 아는사람은 드물다.
「경교장」은 45년 11월23일 상하이(上海)임시정부에서 귀국한 김구선생이 49년 6월26일 안두희(安斗熙)의 흉탄에 맞아 숨질때까지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던 역사적 장소.이승만(李承晩)박사의 이화장(梨花莊),김규식(金奎植)선생의 삼청장(三淸莊)과 함께 정부수립이전 건국활동의 3대 요람이었다.
경교장은 일제하인 38년 「금광(金鑛)부자」로 불리던 친일파최창학(崔昌學)이 1천5백84평의 대지에 연건평 2백65평(지하1층.지상2층)규모로 지은 일본식 건물로 원이름은 「죽첨장(竹添莊)」이었다.崔씨는 해방이 되자 자신의 친일 행위를 뉘우친다며 이곳을 김구선생의 거처로 제공했고 김구선생은 죽첨장이라는일본식 이름 대신 근처 개울의 이름을 따「경교장」으로 개명했다. 김구선생 서거직후 경교장은 자유중국 대사관저로 사용되다 6.25때는 美특수부대가 주둔하기도 했다.또 휴전후에는 월남 대사관저로 사용되는등 여러차례 주인이 바뀌다 67년 고려병원이 건물을 인수,9층짜리 병원건물과 연결해 내부를 수리 하고 현관으로 쓰고있다.때문에 건물 외벽과 지붕만이 보존되고 있어 역사의 현장임을 실감케하는 옛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건물정문 왼편 구석진 곳에 서있는 「김구주석(대한민국임시정부)이 사시다 서거하신 곳」이라는 표시석만이 말없이 비극의현장이었음을 전해주고 있다.
鄭泳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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