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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주말 산책] 중년소년 박상우에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1호 39면

학교 후배, 특히 남자 후배들을 볼 때면 애틋하다. 2년제 대학을, 기술대학도 아니고 예술대학을 나와 밥벌이하기가 오죽 힘들지 빤히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출판사나 회사 홍보실에 취직해도 승진이 잘 안 되니, 몇 년을 버티다 그만두는 일이 적지 않다. 편입하거나 유학을 가 학벌이라는 상징자본을 제 것으로 만든 후배도 간혹 있지만, 대개는 그처럼 강인하지 못하다. 그래서 어쩌다 한번 보게 되는 그들의 모습은 해가 갈수록 애잔해진다. 시인 박상우도 그런 내 후배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나온 『이미 망한 生』은 1988년 『사람구경』, 91년 『물증이 있는 삶은 행복하다』라는 시집을 낸 박상우의 세 번째 시집이다. 16년 만에야…. 그 16년 동안 나는 그를 여섯 번쯤 만났다. 그중 네 번은 일이 년 안쪽 일이다. 다섯 해 전엔가 동창 모임에서 봤을 때 “상우야, 오랜만이다!” 반기자, 그는 심드렁하게 “오랜만은 무슨 오랜만이에요? 몇 년 전에도 한 번 봤잖아요” 대꾸했다. 퉁명한 말투였지만 그의 눈빛 속에 반가움이 수줍게 아른댔다.

첫 시집을 낼 때만 해도 전도양양한, 매우 ‘주목받는 젊은 시인’이었던 그가 16년 동안 그 흔해터진 문예지들에서 자취가 없었던 건 어이없는 일이다. 직장도 없고 숫기도 없는, 누가 먼저 부르기 전에는 나설 줄 모르고, 수줍다 못해 때로 사납던 그의 비사회성만이 원인은 아닐 것이다. 20년 전쯤 어느 날 인사동 한 포장마차에서의 박상우를 떠올리니 실실 웃음이 난다. 걷은 회비가 남아 2000원인가를 그에게 돌려줘야 했는데 내가 장난으로 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표독스레 이죽거렸다. 그 돈으로 콘돔이나 하나 사 쓰라는 것이다. 아, 그 순수하리만치 유치하게 약이 잔뜩 오른 얼굴이라니.

“우리 집 마당의 앵두나무는/ 올해도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나는/ 계속 꽃도 피지 못하고/ 열매도 맺지 못한다 / 뿌리가 毒에 흠뻑 젖어 있는 듯하다” (‘태치갈리아’에서)

발표 지면을 갖지 못한 작품이 쌓이면 자가중독을 일으킨다. 아무리 자생력이 강한 작가라도 말이다. 영국 소설가 기싱이 200여 년 전에 썼듯 “유명해야 유명해질 수 있는” 게 세태라지만 이 과하다 싶으리만큼 예민하고, 고지식하다 싶으리만큼 진지한, 멀쩡한 시인을 그토록 오래 방치했다니, 폭력이다.

“비트 안은 불안하기도 하고/ 아늑하기도 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다만 내가 늙었다는 느낌은 든다/ 이대로 있어야만 하는가” (‘무덤 속, 비트를 탈출하다’에서)

지난해 이맘때 그는 비트에서 몸을 일으켜 밖을 둘러볼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그 일단으로 내게 ‘중년소년의 제1신’ 이란 e-메일을 보냈다. 마침 그때 나는 세 마리째 고양이에 대한 부담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에게 고양이 한 마리 기를 생각 없느냐는 메일로 답했다. 그리고 곧, 너무 답답해서 한번 해 본 말이니 잊어버리라는 메일을 보냈건만, 이날 이때껏 2신이 오지 않는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그는 “못 길러요” 한마디도 못할 정도로 ‘눙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다.

상우야, 너 정말 어떻게 먹고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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