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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평양’ 열어젖힌 뉴요커의 선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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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10면

평양은 뉴요커를 여러 번 놀라게 했다.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글렌 딕터로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리허설”을 기억하고 있다.공연 당일 오전 10시 리허설에는 일반적인 공연 연습 때와 달리 객석이 꽉 채워져 있었다. 평양 시민이었다. 이들은 본공연에 온 청중처럼 옷을 차려입고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뉴욕 필하모닉 무대 뒤에선 어떤 일이 있었나

한 차례 이상의 공연을 요구했다고 알려진 북한 문화성이 리허설에까지 청중을 보낸 것이다. 전 세계로 방송된 오후 6시 공연의 청중은 반 정도가 미국ㆍ한국의 외교계 인사, 취재진 등이었다. 하지만 오전 리허설에서는 1500석 전부 평양 시민이 앉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원래는 뉴욕 필이 공연 연습을 하는 시간이었고 취재진을 위해 오픈하기로 했던 터였다. 하지만 로린 마젤은 순발력 있는 지휘자다. 그는 연습 대신 공연을 택했다. 북한의 ‘애국가’부터 앙코르 곡 ‘아리랑’까지 멈추지 않고 연주했다. 하나의 작은 공연이었다.

리허설의 티켓은 주로 평양 시내 학교 선생님들에게 배분된 모양이었다. 자신을 “‘금성 학원’에서 체육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소개한 김준호(48)씨와 “소학반 아이들의 음악선생”이라고 밝힌 이보아(40)씨가 객석에 앉아 있었다. 이들은 “우리가 아는 음악과 다르다”며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피바다’ ‘꽃 파는 처녀’ 등 혁명가극과 전통 음악ㆍ무용 등이 공연되던 곳에서 울린 미국의 소리에 생소해했다. 하지만 객석 가장 뒤편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은 밝히지 않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빈ㆍ베를린 필하모닉의 CD를 구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이 다가와 귀를 기울이자 입을 닫았다.

북한의 전통 악기 연주자 6명이 쭈뼛쭈뼛 리허설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이들은 나비 넥타이에 턱시도 차림이었다. 몸에 맞지 않는 듯 어색해했다.북한 작곡가 최성훈이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아리랑이 시작됐다.

모든 악기가 화음을 연주한 뒤 피콜로가 멜로디를 이어받았다. 그리고 북한의 전통 목관악기 ‘장새납’이 나왔다. 서양 악기로 치면 플루트ㆍ피콜로ㆍ오보에와 비슷하게 생긴 북한의 악기를 들고 나온 6명의 남성 연주자와 뉴욕 필이 함께 아리랑을 연주했다.

모두 로린 마젤의 아이디어였다. 25일 저녁 만수대 예술극장에서 북한의 전통 무용ㆍ음악 공연을 본 마젤은 “저 목관 악기들과 함께 앙코르를 연주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놨다고 한다. 그리고 26일 아침 일찍 북한 연주자들이 급하게 섭외됐다. 마젤은 공연 2시간 전까지만 해도 “재미있는 일이 늘 그렇듯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들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리허설에서 맞춰본 공연은 청중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서양의 턱시도를 차려 입은 6명이 뉴욕 필의 제1바이올린 파트와 함께 아리랑 선율을 연주했기 때문이다. 뉴욕 필은 이들과 함께 연주하기 위해 목관 악기의 음량을 절반 이하로 줄였다. 또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합쳐져 큰 음량이 나오는 후반부를 생략했다. 이 때문에 원래 8분짜리였던 곡이 반으로 짧아졌다.

그런데 본공연에서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뉴욕 필의 악보를 담당하는 샌드라 피어슨은 “우리도 시작 20분 전에야 불참 통보를 받았다”며 허탈해했다. “북한 측에서 허가해줄 수 없다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사전에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연주자들을 섭외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북한 측에서 리허설을 본 뒤 마음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왜일까. 피어슨은 “북한 측에서 청중과 출연자의 감정적인 동요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전했다. 북한 측에서 “아리랑은 우리 민족에 큰 의미가 있는 곡이라 이렇게 연주할 수 없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뉴욕 필은 공연 추진 과정에서 “북한이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이 6명을 거둬들인 일은 북한이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신호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처럼 처음 만난 문화에 뉴요커들의 마음은 얼어붙어 있었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의 청중과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단원들은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동안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문화적 충격을 털어놨다.

이 얼음은 무대에서 녹았다. 드보르자크 ‘신세계 교향곡’ 2악장. 고향을 그리는 작곡가의 마음을 표현한 이 유명한 선율에서 단원들은 음악에 메시지를 싣기 시작했다. 오보이스트 로버트 보티가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 세련된 표현을 해냈다. 애끓는 듯 얇고 연약한 소리였다.

이어 바이올린과 비올라, 마지막에는 첼로가 합세했다. 곧 모든 오케스트라가 함께 노래했다. 청중의 집중력이 느껴졌고 어색함이 누그러들었다.
오려다 붙인 사진 같았던 뉴욕과 평양의 만남이 음악으로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가장 기막힌 합성 사진은 평양의 음악학도들과 뉴욕 필 단원들이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공연에 앞서 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했다.

바이올린 줄과 송진·악보·관악기의 리드였다. 또 모차르트ㆍ하이든ㆍ베토벤의 모든 음악이 들어 있는 CD 전집도 있었다. 이 선물을 대표로 받은 학생 중 우혜영(20ㆍ더블베이스)씨는 이전에 중국과 러시아 교향악단의 클래식 음악을 접한 경험이 전부였다.
이들 사이에 어색함이 사라졌다는 것을 공연의 가장 마지막 장면이 증명했다. “우리가 서로 손 흔드는 장면 봤어요?” 공연을 마치고 무대 뒤에서 만난 베이시스트 존 딕이 흥분한 채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과연 박수나 쳐줄까 걱정됐던 ‘딱딱한’ 사람들이 손인사를 해줬다”는 것이다.

백악관에서는 이번 공연의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평양에서 만난 북한 사람 중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로린 마젤은 모든 연주를 마친 뒤 “사람이 중요했다”고 정리했다. 적지 않은 사람이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60년째 뉴욕 필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스탠리 드러커(79)는 1959년 레너드 번스타인과 함께 소련 연주도 함께했던 인물이다. 그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드러커는 평양 연주를 마치고 인천으로 들어오면서 기자와 만나 천천히 말을 이었다. “늦지 않게 이 사람들을 만난 나는 행운의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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